[월요논단]'이른 바 판사'는 없다

손수일

발행일 2017-02-1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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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인용·기각 외치는
촛불·태극기집회·언론 등 압박
법치국가 근간 흔드는것 다름없어
그동안 분출된 민심 보여준 만큼
헌재 최종심판 지켜보고 결과 승복
성숙된 국민의식 보여줘야 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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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최근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의 로바트 판사에 대하여 분노한 대통령이 "이른 바 판사(so-called judge)라는 자들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다"며 말 폭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한 상원의원은 "우리에게는 '이른 바 판사'는 없고 진짜 판사(real judge)만 있을 뿐"이라 맞 받았고, 또 다른 상원의원은 "때때로 우리는 판사들에게 실망하지만 판사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삼권분립의 법치국가 미국의 한 면목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미국이 지구촌 리더의 역할을 유지해 온 기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법권 독립과 존중의 국가체제에 있다. 삼권분립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 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 여론이라 하여도 사법적 재판에서는 법관의 판정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이를 거부한다면 법치주의의 기초가 유지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채택한 삼권분립 제도하의 사법권 독립은 그 어떠한 외부의 영향이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판사는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고 판정을 내린다. 헌법재판은 물론 민사, 형사, 그 어떠한 재판에서도 사법권 독립은 지켜져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 등 무시못할 강력한 외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서 국가권력이나 정파 또는 여론에 휘둘리는 판사라면 '이른 바' 무늬만 판사일 뿐이다. 외적 요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판사 개인의 내적 성향조차 극복하고 오직 법리에 집중할 수 있을 때라야 진정한 판사라 할 수 있다. 소금이 그 짠 맛을 잃어버리면 소금 역할을 할 수 없듯이, 판사가 외적 내적인 독립성을 잃게 되면 국법 질서의 최후 보루인 사법권이 퇴색하여 법치국가의 기강이 무너진다.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인으로도 활동중인 필자는 가끔 중재사건의 심판을 주재하게 된다. 치열하게 공방하는 양쪽 당사자의 상반된 논리와 자료의 홍수 속에 중심을 잡고 심판관으로서 공정한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변호사로서 당사자 일방을 위한 변론을 할 때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헌법재판처럼 중재재판도 상급심이 없는 단심으로 끝나므로, 최종 결론에 대한 부담감은 가중된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주요공무원을 그 직위에서 파면하는 탄핵을 국회의결이나 국민투표 등으로 결정짓지 아니하고 헌법재판관들이 최종 심판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탄핵이 의회 등 정치적 세력이나 국민여론에 좌우되지 않고 재판관의 순수한 법률적인 판단으로 최종 결정되고자 함이다.

현재 국회가 의결하여 헌법재판소에 소추한 박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직권남용 또는 직무태만, 뇌물수수 및 국가기밀누설 등이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려면 그러한 국법위반 사유가 국민신뢰를 저버려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것에 해당되어야 하고 그 해당 여부는 오로지 헌법재판관의 법률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

탄핵 인용이나 기각을 외치는 촛불이나 태극기 집회의 세대결이나 언론보도 등 압박으로 헌법재판관의 마음을 흔들고 원치 않는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겠다는 엄포는 헌법재판관을 이름뿐인 '이른 바 판사'로 만들어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들겠다는 것에 다름 없다. 그동안 자유로운 언론보도나 평화적인 시위를 통하여 분출하는 민심을 최대한 보여준 만큼 이제는 광장의 세대결이나 과격한 표현들을 절제하며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을 지켜보는 성숙된 국민의식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줄 때다.

헌법재판관들이 외부의 어떠한 정치세력이나 견해, 언론 또는 광장의 민심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진짜 판사의 살아있는 양심과 독립적인 판단'으로 드러난 증거와 소명된 자료를 공정하게 평가하여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을 고대한다. 나아가 헌재의 심판결과가 어느 쪽이든 그에 대한 모든 국민들의 승복만이 국론분열의 혼돈에 빠진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의 근간을 지켜 대한민국 선진화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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