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하필(何必) 왜 불필(不必)입니까"

정진오

발행일 2017-02-16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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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눈치 못 채
선거때마다 출마자들 특권 내려놓겠다고 아우성
'진정 '쓸모있음'은 비움에서 출발' 성철은 가르쳐


정진오 사진(새 데칼용)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김정남은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독살을 당했을까. 김정남은 그렇게도 북한 측에 불필요한 존재였을까. 이 두 문장에서 쓰인 하필(何必)과 불필(不必)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요즘 정치판에는 참 많은 군상이 등장한다. 대통령을 필두로 정치인은 필수이고 관료와 법조계 인사, 그리고 대학교수 집단까지. 돈이면 물불 가리지 않고 좇아가는 저잣거리 간상배나 진배없는 이들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장면을 연속극 보듯 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들은 어김없이 우리의 눈과 귀를 괴롭혀 결국은 자괴감에 젖게 한다. 그러면서 드는 질문 하나, 저들은 꼭 필요한 존재일까. 그 질문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요새는 '나는 필요한가'로 옮아가고야 말았다. 답을 못 내놓는 불초한 입장에서 스스로 묻고 답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 두 단어를 말하기 위해서는 성철 스님(1912~1993)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1957년 스님의 딸 수경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머리를 깎았다. 성철은 딸에게 법명을 내렸는데 바로 '불필(不必)'이었다. 딸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으니 그 맘이 오죽하였으랴. "하필 왜 불필입니까." 딸은 따지듯이 물었다. 이제 사바세계의 아버지가 아니라 산중의 스승이 된 성철은 답했다.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을 알게 된다." '왜 꼭 필요한지'를 알면 '쓸모없음'을 알게 된다니, 세속에 찌든 우리야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다.

성철은 산중으로 자신을 찾는 이들 누구에게나 삼천배를 시켰다. 노인이나 병자도 예외가 없었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이다. 몸이든 마음가짐이든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절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삼천배를 하는 데 며칠이나 걸린 경우도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폐병 말기 비구니가 있었다. 죽기 전에 스님의 법문을 꼭 듣고 싶었다. 성철은 죽게 생긴 이 환자에게도 삼천배를 요구했다. 걷지도 못하던 이 비구니는 이를 악물고 며칠이 걸려서 드디어 삼천배를 마쳤다. 그런데 웬일인가. 중증환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 비구니는 몇 달이나 계속해서 삼천배를 이어갔고, 마침내 그의 몸에서 폐병이 사라졌다. 아무 쓸모도 없을 때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삼천배의 그 과정에서 그 환자는 쓸모 있는 몸으로 다시 환생했다.

우리 정치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전혀 눈치조차 못 채고 있다. 오죽하면 경제분야이고 사회분야이고 정치만 개입하지 않으면 다 잘 돌아갈 것이란 우스갯소리마저 나올까. 제일 꼴불견이 남들은 다 쓸모없다고 평가하는데 정작 자신은 엄청나게 쓸모가 많은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 정치인들이다. 선거 때만 되면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특권도 그만한 쓸모가 있다면 얼마든지 누려도 된다. 문제는 그런 쓸모도 없는 존재들이 특권을 누리고, 그 특권에 기대어 더욱 쓸모없어지는 데에 있다.

진정한 의미의 '쓸모 있음'은 아무것도 없이 비우는 데서 출발한다고 성철은 가르쳤다. 그 비움은 재물 욕심을 버림에 있다. 성철이 가난을 가르치면서 자주 인용했다는 경구는 매일같이 쓸모없는 정치판을 바라봐야 하는 오늘에 무척이나 쓸모 있게 다가온다. '지난해에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마저도 없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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