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김종 전 차관과 어느 심사위원장의 차이

임성훈

발행일 2017-03-0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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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선 싫어한다고 '박태환 올림픽 포기' 종용
美展 심사위원장, 화가와 사이 안 좋았지만
뛰어난 작품에 흔들림 없이 '최우수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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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얼마 전 인천의 한 체육계 인사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천시가 박태환의 재영입을 추진할 때였다고 한다. 그 체육계 인사는 당시 유정복 인천시장을 거들어 박태환의 인천시청 재영입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문광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요지는 '위에서 싫어하는데 왜 굳이 박태환을 영입하려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종 전 차관이 박태환에게 리우 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한 사실이 이미 드러난 만큼 그 '윗선'은 짐작이 가능한 터다. 대통령이 문광부 관계자를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을 정도이니, 그 윗선의 수위는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여러모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일화는 중앙의 스포츠 권력이 지역에까지 마수의 손길을 뻗쳐 스포츠는 물론 지방자치의 본질마저 훼손하려 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한 선수의 미래마저 짓밟으려 한 권력의 집요하고 추악한 이면이 드러났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이보다 더한 체육계 농단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웬만한 비리에는 '만성'이 돼 있었지만, 빗나간 권력의 속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복수를 조직의 행동강령으로 삼고, 끝까지 찾아가 무참히 제거해 버리는 영화 속 조폭과 무엇이 다른가.

이 대목에서 그 체육계 인사, 그리고 인천시가 '윗선'의 압력에 굴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박태환은 지난해 10월 전국체육대회에서 올림픽 메달권 기록에 근접하는 성적을 냈다. 이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4관왕에 올랐고 12월 캐나다에서 열렸던 쇼트코스 세계수영선수권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앞서 뛰었던 올림픽에서의 초라한 성적표를 상쇄시키는 결과물들을 쏟아낸 것이다. 사실 올림픽에서의 부진은 김종 전 차관의 스포츠 농단과 맞물려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훈련에 매진해야 할 선수가 마음고생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성적이 좋았을 리 만무하다.

박태환은 인천시의 지원에 힘입어 올림픽 이후 이를 악물었고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다시 입증했다. 만약 인천시가 박태환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이 걸출한 수영선수는 더 이상 물살을 가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체육계 인사는 "요즘에서야 소신을 갖고 외압에 맞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 인사의 얘기를 전하면서 김종 전 차관을 들먹이다 보니 예전에 책에서 접한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한 미술대전에서 심사위원장이 출품작들을 둘러보며 심사를 할 때였다, 한 그림 앞에서 심사위원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출품자가 심사위원장과 사이가 안 좋기로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화가였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XXX"라는 욕설이었다. 이어 그는 "그림 하나는 잘 그린단 말야"라고 말끝을 흐리고는 다른 그림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위 사람들은 그 화가의 입상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그 작품에는 '최우수상'이라는 리본이 달렸다.

대통령 탄핵 선고일이 다가올수록 그 심사위원장과 김종 전 차관과의 간극이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권력자들이 '공'과 '사'의 사이에서 흔들림이 없었던 심사위원장의 반의 반만 닮았어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듯싶다.

/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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