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더 이상 슬픈 국민이 되지 않았으면…

김영박

발행일 2017-03-1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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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국가 지도자는
달콤한 공약·장밋빛 청사진보다
슬픈 민모습 솔직하게 외쳤으면…
30년간 변함없는 정치 '되레 퇴보'
이제 새 지도자는 더이상 우리를
'슬픈 족속' 되지않게 해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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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전 서울대교수
몹시도 추웠던 겨울을 박차고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펴며 따뜻한 봄을 맞아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어쩐지 올해는 여느 해와 다른 것 같아 자못 걱정스럽다. 지난 반년 이상 온 나라가 최순실 국정농단과 탄핵정국으로 고된 몸살을 앓는 동안 자국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중국으로부터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성 조치들이 강하게 밀어닥치며, 연임에 성공한 일본의 아베정부는 전에 없이 강경한 태도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탄핵인용으로 우리 정국은 사상 초유의 새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하루빨리 냉정을 되찾고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하여 나라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박한 국제정세와 경제상황은 그 변화를 가늠하기가 어렵고, 북핵 문제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앞으로 두 달 후면 새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고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나라가 조금은 안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가 새로 들어선다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고 나면 바다는 잠잠해 지지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오랫동안 그 상처가 남아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될수록 빨리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를 메우려고 하나 그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시간도 오래 걸리고 또 힘도 많이 든다. 촛불과 태극기 민심의 갈라진 틈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 남과 북, 동과 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금수저와 흙수저, 노동계와 교육계의 고질적 편 가름들이 골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치명적 상처임에 틀림없다.

불과 70년 전 참혹한 전쟁에 시달리며 국민소득이 불과 50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극빈국가에서 지금은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경제 및 무역규모가 세계 10위권, 대학진학률 1위, 반도체생산 1위, 자동차생산 5위 등 지표상으로는 상당한 지위에 올라있는 것처럼 보이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4대 강국을 '놈'이라 부르는 세계 유일의 나라 한국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 받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10년째 국민소득 2만 달러 대를 탈피하지 못하고 선진국의 문턱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한국에 관심을 가진 어느 영국 경제학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가 한국이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해서 지적한바, 첫 번째가 남이 잘되는 꼴을 참지 못하는 배 아픔의 문화요, 두 번째가 법이나 관행을 무시해버리는 떼법 문화이며, 세 번째가 과격한 귀족노조의 막무가내식 파업문화와 함께 마지막으로 이념교육에 매몰된 전교조와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청소년의 사교육 문화라고 하였다. 외국인치고는 참으로 우리의 문제를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우리의 치부가 들킨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안전하고 윤택하며 즐겁게 살고 싶어 한다. 선진국이라면 이 같은 국민 삶의 기본적인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나라이다. 영국 경제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우리에게 내재된 잘못된 가치와 질서의식, 그리고 함께 해결해야 할 노동과 교육문제 등 국가라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바라는 국가의 지도자는 그 어떤 달콤한 공약이나 장밋빛 청사진보다 우리 앞에 드러난 민 모습의 슬픈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이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입니다'라고 솔직하게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1987년 헌법개정 이후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직 정치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이제 새 시대의 지도자는 우리를 더 이상 시인 윤동주가 읊은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짓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인 '슬픈 족속'이 되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

/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전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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