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사람이 나고 죽는 것에는 명수가 있고 부하고 귀한 여부는 하늘에 달려있다"는 생사유명(生死有命) 부귀재천(富貴在天)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자하의 언급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의 통념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의 운로가 일정정도 예정되어있는 것은 인류 역사이래 그 형태와 정도가 변화되어오기는 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이런 푸념이 수저타령으로 내뱉는 대중들의 넋두리인 것 같다. 개인의 생사와 부귀가 천명(天命)에 달려있다고 할 때 그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별로 없었고 실제 고대 신분제의 사회가 그랬다.
이런 천명을 지금의 시대에 와서도 받아들여야할까? 현대는 죽을 사람도 살리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명수(命數)를 뜯어고칠 수 있는 시대이다. 반면 부귀는 정치경제권력이다. 진시황도 수명에는 별수 없었던 예전보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한 이유는 생물학적인 수명을 경제력과 정치권력이 다룰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이 정치경제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상대적 차별이 더 심해지는 구조로 굳어가는 이유이다. 오래살고 돈 있고 권력 있으면 영달이고 그렇지 않으면 궁색하다는 논리가 향후에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움직인다. 정치경제권력의 독점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 세상은 영달로 가기보단 궁핍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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