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집중무권: 가운데만 잡고 저울질을 하지 않음

철산 최정준

발행일 2017-03-22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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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이란 책도 있고 중용타령을 많이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게 중용의 중(中)이란 개념이다. 현실에서 중용을 강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면 그의 말문이 막힌다. 이와 관련해서 맹자의 말을 곱씹어보면 그 의미가 좀 선명해진다. 맹자는 세 인물을 비교하였는데 양자(楊子)와 묵자(墨子)와 자막(子莫)이다. 양자(楊子)라는 이는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설사 자기 몸의 한 터럭을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하지 않는다. 묵자(墨子)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한다. 자막(子莫)은 이 두 사람의 중간을 잡았으니 중간을 잡은 집중(執中)은 좋지만 중간을 잡는데 저울질하지 않고 잡으면 이것은 한 곳만 고집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한 곳을 고집하게 되면 道를 해치니 하나를 들기 위해 백 가지를 폐기하는 병폐를 낳는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것은 중용을 저울질로 비유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쓰였던 저울대를 보면 표면상으로는 가운데를 잡을 수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가운데가 아니다. 왜냐하면 저울추를 한 곳에 두면 저울에 단 물건의 무게에 따라 기울어지기도 하고 평평해지기도 하는데 저울대가 평평해지면 그곳이 중이지 정해진 중(中)이 없다. 그러므로 맹자는 물건의 경중을 저울질 한 뒤에야 진정한 중(中)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결국 중(中)이란 것도 나와 가족과 세상이 기울어지지 않음(平)을 위한 최선의 방도임을 알 수 있다. 자기원칙만 고집하고 저울질을 하지 않게 되면 인간의 도리를 해칠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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