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다시 봄 편지

권성훈

발행일 2017-04-0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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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201000031900001742
함성호(1963~)

날이 많이 풀렸지요?// 흰 꽃 피워 그대에게 한 송이/보내고 싶은 정옵니다// 꽃은 시들겠지만 하고, 이어서는(영원한 것을 묶어 두는 문장이어야겠지만)// 나의 아트만도 내일이면 시드니/그대가 오늘 이 꽃을 보면// 우리의 생이 다하도록/―하겠습니다// 다시 추위가 있을까요? 하는/질문은 가능하겠지 만은// 그건 모르는 일이겠지요// 종이꽃에 물을 주는 아이를 보세요// 때로는 쇠락함이, 다시 그럴 수 없는// 영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원래 나타나지 않았던 듯/―하겠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꼴이 마음에 드나요?// 아직 불러줄 노래도 많은데/짧게, 우리 서로의 // 눈 속에 잠깐, 아름답게/―있었지요

함성호(1963~)


2017040201000031900001741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변하지 않는다는 말만 변화하지 않듯 불변할 것 같은, 사랑도 움직인다. 자연이 보여주는 사계는 그것을 성찰하게 만든다. 날이 풀린 따듯한 봄날 정오, 활짝 핀 목련꽃과 같이 곱게 핀, 사랑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제 시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사라지고 소멸되어 가는, 사랑을 고정시키는 것은 그대라는 '흰 꽃 한 송이'처럼 '영원한 것을 묶어 두는' "사랑의 문장"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영원하지 않는 "우리의 생이 다하도록" 우리는 어떻게 사랑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꼴이" "종이꽃에 물을 주는 아이"의 무모함일지라도, 불러줄 노래가 있다면 그대로 하라. 매순간 "우리 서로의 눈 속에 잠깐, 아름답게" 머물게 되리니, 짧은 그 순간만큼 괄호( )라는 영원 속에 놓여있지 않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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