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이제 다시 현실

홍창진

발행일 2017-04-0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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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라는 허울에 사로잡혀
일상의 기쁨 외면하며 살면 안돼
행불행은 타고난 환경·스펙 아냐
가난하다고 행복까지 포기 말자
더 정의롭게 더 사랑하며 사는게
우리 흙수저들의 당당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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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민심이 모여서 정의를 이루었다. 민주사회는 국민이 주인이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보다 더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다. 계층 간의 격차가 해소되고 공정한 경쟁사회를 희망해 본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대다수가 흙수저이고 당분간은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년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오던 A군.

그는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밤낮으로 공부한 끝에 드디어 군청에 출근하게 되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태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다. 그런데 1년 후 A군은 모텔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싸늘히 식은 그의 주검 곁에 유서 한 장이 발견되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 이렇게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A군은 가족들에게 시험에 또 떨어졌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매일 아침 출근한다며 집을 나와 길 위를 떠돌았다. 그러기를 꼬박 1년, 매달 부모님께 드린 생활비와 용돈도 실은 대부업체를 통해 마련한 것이었다.

올해 초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신문 사회면에 작게 실렸던 이 사건이 유독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건 벼랑 끝에 내몰린 그의 고통이 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흙수저라 불리는 이 시대 모든 젊은이의 자화상이 아닐까?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아무리 노력해도 쥐구멍에 볕들 날을 기대할 수 없다. 부와 가난이 혈연을 통해 대물림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현실 앞에서 젊은이들은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젊은이들은 절대 이런 일로 부모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을 안고 꿋꿋이 살아온 부모를 애틋하게 생각한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A군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젊은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좀 기죽지 말고 당당해져야 한다. 열악한 현실이 원망스럽기는 해도, 어떻게든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갖은 구박을 당하고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도 가족 앞에서는 괜찮다고 웃어 보이는 우리가 아닌가? 그런 고통을 말없이 떠안고 있는 것만으로 자긍심을 갖기 충분하다.

중요한 건 흙수저로 대변되는 우리 젊은이들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의에 눈 밝고 가족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주어진 여건 안에서 자기 계발도 하고 내 인생을 소중히 가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다. 떳떳하게 목에 힘주고 살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맞서 이겨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의무에 앞서 우리 스스로 활기를 찾을 필요가 있다. 분노하고 원망만 하며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다. 문제 해결도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즐기고 누리는 중에 해야 한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하고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흙수저라는 허울에 사로잡혀 일상의 기쁨들을 포기하며 살지는 않았으면 한다. 금수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행복한 건 아니다. 행불행은 타고난 환경이나 스팩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내가 얼마나 사랑하며 사는가에 달렸다. 가난하다고 행복을 포기하진 말자. 더 정의롭게,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 흙수저들이 누려야 할 당당한 권리다.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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