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응무소주: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다

철산 최정준

발행일 2017-04-0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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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다가도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삶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석가는 누구든 태어나면 예외 없이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생의 덧없음을 무상(無常)으로 설파하였다. 인간 뿐 아니라 태어난 모든 존재 즉 중생(衆生)은 다 그렇다. 젊어지면 좋겠고 늙어 가면 서럽고, 병들면 아프고 건강하면 괜찮고, 죽어 가면 슬프고 살아나면 기쁘고, 중생의 역사는 한마디로 일희일비(一喜一悲)의 이력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이렇게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주인공을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인 소위 '나'도 모르는데 '내 마음'을 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렇게 그를 알지 못한 채로 육척(六尺) 육신에 갇혀서 사는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두 수인(囚人)이다. 그것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다가 죽음에 임박해서 느낄 뿐,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100여년 지내다 또 어디론가 갇히는 것을 돌고 돌며 육도(六道)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슬퍼 대비(大悲)하다고도 한다. 육신에 갇힌 진불(眞佛)은 그렇게 일정한 주소가 없으니 금강경에 무소주(无所住)라 하였다. 예전에 초상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상여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이 "많은 죽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사람을 따라가는구나!"했다고 하듯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자유롭다고 믿는 우리는 실은 모두 돌아다니는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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