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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선거

[대선 후보 '라이프 스토리']국민의당 안철수

벤처신화 일군 의사 '끝나지 않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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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책벌레였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의사, 벤처기업 최고경영자, 국회의원 등을 거치며 매번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왔다. 그의 '소울메이트'인 아내 김미경 씨도 그와 마찬가지로 도전의 삶을 살았다. 그의 대선 도전이 주목되는 이유다. /안철수 캠프 제공

서울시장·대선 '통 큰 양보' 경험
새 정치 표방하며 정치내공 쌓아
'원내 3당' 창당… 총선에서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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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대선 주자로 선출된 안철수 후보는 1962년 2월 26일 부산 진구 범천동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새의 알을 품으면 새끼가 태어난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메추리알을 품은 채 잠들기도 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기계에도 푹 빠졌다.

라디오·시계·전축 등 눈에 보이는 대로 분해한 뒤 다시금 뚝딱 조립해 냈다.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독서에 흠뻑 빠진 그는 걸어 다니면서까지 책을 읽었을 정도로 '책벌레'였다.

이후 그는 서울대 의대에 진학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의 길을 걷는다. 의대 재학시절 진료 봉사활동을 하면서 안 후보는 처음으로 사회 현실에 대한 고민에 눈을 떴다. 그는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로 초등학생 손녀와 단둘이 살며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꼽았다.

안 후보는 "소설보다 잔인한 비극을 경험했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1988년 초 '브레인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당시 의대 박사과정 중이던 그는 스스로 바이러스를 분석, 이를 퇴치하는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의사 안철수는 점차 컴퓨터 프로그래머 안철수로 바뀌어 갔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 새벽에 일어나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교에 가서는 실험에 몰두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토록 고생해 만든 백신 프로그램을 그는 무료로 보급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의사 겸 백신 프로그래머로서의 생활은 7년간 이어졌고, 안 후보는 "비록 몸은 고되었으나 사명감과 보람을 느꼈다"며 당시의 소회를 전했다.

결국 그는 1995년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10년간 벤처신화를 일궈냈지만, 회사 창립 10년만에 돌연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났다. CEO 한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크면 회사가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와튼스쿨 석사과정에 도전했다. 이미 마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방문연구원이나 교환교수가 아닌 시험을 통해 경영학도의 길을 택했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청년들의 좌절과 방황을 보며 고민이 깊어 졌던 안 후보는 '청춘콘서트'를 열기 시작했다. 청년들을 직접 만나고 자신의 경험과 배움을 나누며 그들의 멘토로 활약, 전국적인 '안철수 신드롬'을 낳았다. 결국 그는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여론의 50%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과감히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며 더 큰 미래를 기약했다. 마치 태풍과도 같았던 '안풍(安風)'에 힘입어 그는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유력 후보로 떠올랐지만,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키며 다시 한 번 '통 큰 양보'를 감행했다.

이후 무소속 신분으로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한 안 후보는 '새 정치'를 표방하며 정치 내공을 쌓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그는 '국민의당'이라는 지금의 원내 3당을 창당, 지난해 4·13 총선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냈다. 이로인해 양당체제가 허물어지고 다당제 정치 풍토가 조성됐다. 안 후보는 총선 직후를 떠올리며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때 국민이 손을 잡아주셨다. 가장 따뜻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평생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 낸 그가 이번 대선 도전을 통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