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앵글 시즌Ⅰ 성곽을 보다·(1)수원 화성]우리를 닮은 듯 굳게 물린 돌들의 연대… 도시를 감싼 너른 품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7-04-18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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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드론촬영22
1796년(정조 20) 7월 19일 완성된 수원화성(水原華城) 성곽 내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화성에는 서북공심돈·남공심돈·동북공심돈이 있으며,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했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여년 세월 견딘 원형 그대로 간직
행궁~창룡문 잇는 가로망 '수원 골격'
서울 통하던 '장안문' 백성 행복 의미
'팔달문' 중앙에 門 사람·물자의 통로


위에서 보면 전체가 보인다. 전체가 보인다고 제대로 사물을 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올려 보는 것이나 마주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움직임과 변화를 드러낸다. 보는 이의 마음도 달라진다. 굽어보는 전체는 순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굽어본다는 말에는 '돌보아 주려고 사정을 살핀다'는 뜻이 담기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제 경인일보는 '하이앵글'을 통해 경기와 인천의 산하와 도심 풍경을 내려다 볼 것이다. '하이앵글'이 첫 번째로 담은 것은 성곽. 성(城)은 역사다. 성곽의 유려함과 그곳에 새겨진 선현들의 발자취를 담아본다. ┃편집자주

수원 화성에는 4개의 각루가 있다. 성곽 내에서도 높은 위치에 세워진 각루는 주변을 감시하는 역할도 하지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기도 하다. 서북각루에 올라 상공을 향했다. 내내 뿌옇던 하늘은 먼지가 걷혀 오랜만에 새파랐다. 파란 하늘 위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화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조대왕의 '효' 사상이 함축된 성으로도 칭송받지만, 수원 화성은 축성 당시 원형이 상당 부분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훼손되지 않은 건 성곽만이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수원천이 북수문(화홍문)을 따라 여여히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은 현재 도시의 주요 골격으로 남아있다. 약 6㎞에 달하는 성곽을 따라가면 4개의 성문이 보인다.

드론으로 본 화성행궁 성곽20
1789년(정조 13)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된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華城行宮).

동서양의 군사시설 이론을 잘 배합한 독특한 성으로 모든 건조물이 제각각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서울로 통하는 장안문은 정문이다. 장안은 수도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도 담고있다. 창룡문과 화서문은 석축 위에 1층 누각을 만들었다.

특히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 유수였던 채제공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사통팔달'의 의미를 지닌 팔달문은 사람과 물자의 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중앙에 문을 낸 것이 특징이다.

200년 전 축성된 수원 화성 속에서 여전히 우리 삶은 계속되고 있다. 도시 사이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차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화성을 중심으로 옛 모습이 잘 보존된 행궁동의 풍광이 자랑스럽다.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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