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제종길 안산시장

"세월호 상처 치유, 국가차원 지원 절대적 필요"

김환기·조윤영 기자

발행일 2017-04-19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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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장1
제종길 안산시장은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이웃을 잃은 시민들이 서로에게 남아 있는 상흔을 보살피고 보듬어야 합니다"며 화합을 강조했다. /안산시 제공

아이 잃은 부모·이웃 잃은 시민,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 서로 보듬어야
유가족과 분노하고 싸워나가고 싶었지만 '장기적으로 도움되는 일' 고민
모든 행정서비스 물밑 지원… 정부, 특별법 명시된 경제활성화등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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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골수도에 잠들어있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3년 동안 어두운 바다 밑에서 거친 조류를 고스란히 받아낸 선체는 상처투성이였다. 3년을 하루 같이 기다렸던 안산 역시 세월호처럼 상처투성이가 됐다. 세월호 현수막 철거, 추모시설 조성, 단원고 기억 교실 이전 등을 둘러싼 민·민 갈등은 증폭됐고 안산은 또 한 번 갈기갈기 찢어졌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경인일보와 만난 제종길(62) 안산시장은 상처와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 수 없는, 그래서 딱 가운데에서 양쪽을 바라봐야 하는 그의 가슴은 양쪽 모두의 아픔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서로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생각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쉽지 않아요.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이웃을 잃은 시민들은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서로에게 남아 있는 상흔을 서로 보살피고 보듬어야 합니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던 지역이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이 살고 있던 도시로, 당시 2학년 학생 246명과 교사 10명이 숨졌고 현재 6명(학생 4명, 교사 2명)이 실종된 상태다. 희생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살던 와동, 고잔동 일대는 충격으로 지역 공동체마저 무너졌다.

전년도에 고교 평준화가 처음 시행되면서 이 지역 학생들이 대부분 단원고로 입학한 것이 희생자가 집중되는 원인이 됐다. 한집 건너 한집에서 피해를 보면서 이웃들은 크게 웃지도, 화사한 옷을 입지도 않게 됐다.

지난 1986년 시로 승격한 이후 안산은 수도권 최대의 국가산업단지인 안산스마트허브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넘치는 공업 도시였다. 하지만 슬픔은 빠르게 전염됐다. 세월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민들은 참사 후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졌다.

제 시장은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슬픔, 그리고 미안함은 안산시민에게는 더욱 특별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성인으로서 세월호에서 끔찍하게 희생된 우리 단원고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것조차 미안하다는 그 감정은 안산을 상징하던 활력을 앗아갔다"며 "지역 경제도 많이 위축돼 안 그래도 힘들어하던 소상공인들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참사 당시 시장으로 출마를 준비했던 제 시장도 곧장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향했다. 제 시장은 "30년 넘게 거주한 안산인으로서 또 안산시장직에 도전하는 사람으로서 충격과 슬픔, 그리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무력감과 미안함에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며 "시장 후보로서 계획했던 많은 일을 변경해 안전이 최우선으로 존중받는 생명도시, 사람의 가치가 회복되는 사람중심의 도시라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

이후 제 시장은 안산과 진도를 오가며 힘든 선거 운동을 했다. 안산에 있을 때는 하루의 첫 시작을 합동분향소에서 했고 지금도 매주 분향소를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 등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시민들은 온도 차를 보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가 안산에 남긴 상처를 잊지 않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과 침체한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이 대립했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이 사용했던 기억 교실 이전을 요구하는 신입생 학부모들과 유가족들도 마찰음을 빚었다.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한 일부 시민들이 세월호 추모 시설 조성을 꺼리는 등 세월호를 둘러싼 반목과 갈등은 증폭돼 갔다.

시민들의 아픔과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제 시장의 책임감은 커졌고 어깨도 무거워졌다.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인지 뒤에서 유가족들을 지원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일부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최대 피해 지역인 안산시장의 무용론마저 제기하기도 했다.

제 시장은 "유가족들과 분노하고 싸워나가고 싶었지만, 안산시장으로서 시정 운영과 장기적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히 유가족들을 지원해 왔고 통장, 동장 등 움직일 수 있는 모든 행정 서비스를 가동해 물밑에서 함께했다"고 말했다.

충격으로 흩어진 공동체와 공감대를 회복하는 것도 숙제였다. 공동체 회복은 단기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차근차근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우선 공무원들과 시민들의 힘을 모아 '희망마을사업추진단'을 구성해 세월호 참사로 인한 집중 피해 지역의 공동체 회복에 나섰다.

마을별로 주민들이 묶일 수 있도록 특화된 테마사업을 선정했다. 추모 사업 추진위원회도 구성해 추모시설 조성 등을 둘러싼 민·민 갈등을 최소화하고 체계적이고 민주적인 추모 사업을 추진하도록 맡겼다.

피해 가정을 보살피고 팽목항과 진도체육관 등 참사 현장에서 가족들의 곁을 지켜주는 일도 중요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피해 가족 지원과 수습 활동을 위해 '행정 지원 돌보미' 제도를 도입했고, 참사 수습을 위한 전담기구인 '세월호사고수습지원단' 출범 등을 추진했다.

'행정 지원 돌보미'는 공무원과 통장 등 3명이 1개 조를 이뤄 피해 가정을 1대 1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1천여 명에 달하는 공무원이 동참했다. 유가족 대책 위원회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피해 가족의 생활 안정을 위한 사업도 추진해 유가족의 일상생활 복귀도 도왔다.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세월호 선체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안산은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세월호 특별법)에 담긴 추모 사업, 공동체 회복, 피해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 지역을 위한 큰 과제들이 남아 있다.

제 시장은 "이 과정에서 공동체 붕괴라는 또 다른 참사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 또한 제 임무"라며 "공동체가 회복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단계 성장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고의 수습뿐 아니라 피해자와 피해 지역의 지원을 통한 회복 등 국가 차원의 책임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에 명시된 지역 경제 활성화, 국립트라우마센터 및 복합시설 건립, 추모시설 조성 사업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사업들을 처음과 같은 의지로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며 제 시장이 실현하려는 안산의 모습은 '생명도시'다. 그가 '생명'을 강조하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사람과 생명의 가치 상실이라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제 시장은 "세월호 참사는 한국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응축된 모두의 아픔"이라며 "안산시가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그간의 적폐를 없애고 새 나라로 거듭나는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환기·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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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 안산시장은?

1955년 경남 창원 출생으로 건국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해 서울대학교 대학원 해양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17대 안산 단원을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도시와 자연연구소 소장, 한국생태관광협회 공동대표, 한국수중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2014년 7월 민선 6기 안산시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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