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집]장애인 손잡는 가천… 우리, 누리다

가천대 길병원, 2014년말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

'병원 영상기록 저장업무' 21명 출발 2년만에 35명규모 성장

직원 10명중 8명 '중증'… 공단, 튼실한 구조 우수 사례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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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 생활·다양한 사회활동
가족 등 '번듯한 직장' 큰 만족
의무존속기간 7년 구애안받고
사업다각화로 안정적 지속 계획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거주하는 지체장애인 서재환(39)씨는 지난 12일 가천누리 수습사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가천대 길병원의 '입원 약정서'를 스캔해 전산 자료로 입력하는 업무를 배우고 있다. 서재환씨는 구로구청에서 장애인 지원 도우미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 일을 2014년 그만둔 뒤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다리가 불편해 '앉아서 하는 일'을 찾던 중 장애인 고용 사이트인 '워크 투게더'를 통해 가천누리에 지원해 합격했다. 서씨는 "여기는 주 업무가 수기 서류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이어서 외부 활동이 적은 게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가천누리는 가천대 길병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협력해 지난 2014년 말 설립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장애인 고용 의무가 있는 모회사가 장애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고,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시설과 근무 여건을 제공하는 사업장을 뜻한다. 가천누리는 길병원 영상기록 저장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로 2014년 12월 장애인 직원 21명으로 출발했다.

2008년 이전 작성된, 수기(手記)로 된 진료 기록을 전산화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사업 초기 병원 안팎에서 '장애인이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런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게 곧 확인됐다.

진료 기록뿐 아니라 병원 내 여러 부서에서 과거 수기로 작성된 기록물을 전산화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이렇게 장애인 21명으로 출발한 가천누리는 2년여 만에 35명 규모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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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가천대 길병원의 자회사로 장애인 직원들이 근무하는 가천누리 사무실을 18일 오후 방문해 수기 서류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는 장애인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② 가천누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사회활동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골든벨 대회에 전 직원이 참석해 동료를 응원했다.③ '사장님 사랑해요' 게시판은 직원들이 손수 쓴 글씨로 만들었다. ④ 지난 해 12월 '송년 길가족 화합의 밤'에서 공연해 금상을 수상했다. /가천누리 제공

가천누리는 중증 장애인 등 사회적 소외 계층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모회사의 업무 편의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천누리는 직원 10명 중 8명은 중증 장애인으로 채용해, 경증 장애인 중심의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다. 연령대별로 20~30대가 80% 이상이고, 성별 분포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이처럼 '튼실한' 구조의 장애인 기업이 된 가천누리는 한국장애인공단의 우수 사례로 다른 기관에 널리 홍보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성과'뿐 아니라 모회사인 가천대 길병원이 얻는 혜택도 적지 않다. 가천대 길병원에는 전자의무기록(EMR) 도입 전 수기로 작성된 문서가 쌓여 있다. 이 문서를 전산기록화하는 작업 기간만 10년 이상이 필요할 정도다.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필수 업무'를 가천누리가 맡게 돼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직원 가족들의 만족도도 높다. 성인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자녀가 소속감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고, 규칙적인 생활과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점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업무 특성도 가천누리의 선호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가천대 길병원 정지영 의무기록실장은 "저희는 100% 장애인 직원으로 돼 있고 두 명의 팀장님들이 직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굉장히 크다"며 "판매량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정확하고 꼼꼼한 업무를 추진하고 있어 직원들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가천누리에 취업한 자녀 때문에 집을 서울에서 인천으로 옮긴 사례도 있다. 가천누리가 문을 연 뒤 2년여 동안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진행한 공개채용에는 늘 많은 사람이 몰렸다.

가천누리 직원 정승호(25)씨의 어머니 이희순(60)씨는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학교'라는 울타리가 없어지고, 장애인 작업장은 크게 부족한 데 아들이 길병원이라는 큰 울타리에 소속돼 있는 게 무엇보다 든든하다"며 "장애인 자녀를 둔 다른 엄마들도 '어유 너무 좋겠다'며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 작업장의 의무 존속 기간은 7년이지만, 가천대 길병원은 가천누리의 사업 다각화를 통해 사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한문덕 가천누리 대표이사는 "타 기관의 수기로 된 기록을 전자기록화하는 업무 대행을 찾고, 길병원 재단 산하 관계사의 인력 지원 업무를 개발해 가천누리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 가천누리가 걸어온 길

2014년 8월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가천대 길병원과 '자회사형 표준 사업장 설립 협약'
2014년 9월 → 가천대 길병원 직원 대상 명칭 공모, '가천누리'(가천과 함께 하는 세상) 선정
2014년 11월 → 가천누리 법인 설립
2014년 12월 → 공개채용 1차 신규직원 21명 근무 시작
2015년 3월 → 가천누리 개소식
2016년 12월 → 직원 8명 무기계약직 전환
2017년 4월 현재 → 장애인 직원 35명(중증장애인 28명)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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