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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원효의 견성오도 성지, 수도사

천년세월 넘어 전하는 '해골물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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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 대웅전 내부. /한광중 제공

폐사·창건 굴곡… 현 평택시 포승읍
경내에 '오도송' 최근 체험관 짓기도

우리나라 고승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 원효(617~686)입니다. 삼국통일 전후에 활동했던 원효는 6두품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과 도당 유학을 포기했으면서도 사상적으로 최고 경지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가 저술한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등은 한국불교사상의 토착화 뿐 아니라 일본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화쟁사상은 상생과 통합운동의 사상적 바탕이 됐습니다. 또 파계 후에는 왕실과 귀족사회에만 머물러 있던 불교를 대중화시켜 신라 백성들을 부처님께 인도했으므로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원효가 한국토착불교의 비조로 추앙받게 된 계기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사건'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원효는 이 물을 마신 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두(話頭)를 가슴에 품고 견성오도(見成悟道)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야기의 전말을 쫓아가 보겠습니다.



원효에 대한 기록은 최치원의 '의상전'과 고려시대 일연의 '효사행장'과 '효사본전'에 수록되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중국에서 쓰인 '종경록'이라는 책에 '시체 썩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고, 988년 송나라 찬녕이 쓴 '송고승전'에도 견성오도 설화가 나오지만 해골물이 아니라 귀신을 만난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설화는 고려 후기 각훈의 '해동고승전(1215년)'에 나옵니다. 해동고승전에 따르면 원효는 34세에 입당구법을 결심하고 의상과 남양 갯가 어느 무덤 사이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견성오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각훈이 무엇을 참고했는지는 모르지만 해동고승전 이후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견성오도했다는 설화는 원효의 견성오도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가 됐습니다. 19세기 후반 범해선사 각안의 '동사열전-원효전'에도 같은 내용이 언급되며, 일제 말 이광수가 쓴 소설 '원효대사'에도 동일하게 언급했습니다.

20여 년 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각 지역의 문화유산은 지역을 알리는 중요한 콘텐츠가 됐습니다.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원효의 견성오도 설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경기도 화성시가 가장 앞서나갔습니다.

통일전후 신라의 대당교역의 창구였던 당항성이 화성시 서신면 당항성의 당은포라는 설에다, 원효와 의상이 계립령을 넘어 충주에서 남한강수로를 이용해 당항성으로 향했을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강수로는 고구려와 군사적 긴장관계에 있는 지역인데다 경기도 이천쯤에서 하선해 육로를 이용한다고 해도 대단한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계립령을 넘은 뒤 충추-청주를 거쳐 통일 전에도 신라의 방어망이 견고했던 진천 엽돈재를 넘는 길이 보다 안전했습니다.

엽돈재를 넘으면 곧바로 직산이었고 이곳에서 안성천수로를 이용하면 빠르고 안전하게 남양만 수로와 연결될 수가 있었습니다. 전해오기로 원효의 견성오도 장소가 '직산' 근처라고도 하고, 각훈의 '해동고승전'에도 '남양 어느 갯가 무덤가에서 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던 점을 감안할 때 남양만으로 건너갈 때 배를 탔던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부근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곳은 조선시대 직산현의 월경지이기도 해서 다양한 상상력을 갖게 합니다.

평택시 포승읍 원정7리 수도사는 원효의 견성오도 사찰로 알려졌습니다. 사찰 경내로 들어서면 원효의 '오도송'이 걸려 있고, 최근에는 견성오도체험관을 준공했습니다. 이곳이 견성오도의 성지로 알려지고는 있지만 사실 본래 위치는 아닙니다. 본래 수도사는 현 위치에서 북쪽으로 2㎞쯤 떨어진 LNG기지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신라 말쯤 남양만에 수적이 들끓고 스님들을 납치하는 일이 잦아 폐사됐다가 괴태산 중턱에 다시 중건됐고 이것마저 폐사되자 1960년 영석스님이 옛 수도사의 명맥을 계승해 창건한 것인데 현재 원효의 견성오도 유적까지 계승해 선양하고 있습니다.

/김해규 한광중 교사

※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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