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네거티브가 더 낫겠다

서민

발행일 2017-04-2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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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대선' 후보들 여전히 장밋빛 공약만 남발
국가채무 627조인데 5년후 생각만해도 무섭다
'헐뜯기 지양 정책대결 하라'는 사회분위기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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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의 공약은 '내각제'였다. 오랜 기간 내각제를 주장한 김종필과 손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합의하긴 했지만, 김대중은 그 공약을 지킬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내각제는 금기의 단어가 됐다. 공약대로라면 99년에 내각제 개헌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렇다 할 해명의 말도 없이 그 시기를 넘겨버렸다. 내각제 개헌이 실제로 가능할 거라고 믿는 이가 없어서였는지,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은 의외로 적었다. 그보다 10년 먼저 대통령이 된 노태우는 대선 당시 "2년이 지나고 난 뒤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역시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러니까 노태우의 공약도 지킬 마음이 없는, 당장 대통령이 되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 그 시절엔 이게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선거 때면 으레 공약이란 이름으로 온갖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난 뒤엔 다 없던 게 돼버리곤 했으니 말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언론 이외에도 시민단체나 개인에 의한 정부감시가 가능해졌다. 별다른 이유 없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왜 공약을 안 지키느냐?"며 대통령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는 지극히 타당한 것이기에, 많은 이들이 여기에 공감했다. 예컨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했던 '반값등록금 공약'을 보자. 그가 이런 공약을 내세운 건 등록금이 비싸다는 대학생들의 요구가 분출되기 때문이었지, 이명박이 특별히 대학생들의 현실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명박은 대통령이 된 뒤 4대강 사업처럼 국민들이 안 지켜도 된다고 했던 공약은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등록금 인하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결국 대학생들은 왜 공약을 안 지키냐며 거리로 나섰다. 이제 더 이상 공약을 내건 뒤 어물쩍 넘어가는 게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장난을 시작한다. "김해에 신공항을 짓겠다고 했지만, 기존 공항을 새것처럼 멋있게 리모델링하기로 했으니 그게 신공항이나 마찬가지다. 난 공약을 지켰다." "근로자들이 세금을 더 내게 됐지만, 이게 증세는 아니다. 따라서 나는 공약파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말장난 역시 박 대통령의 몰락에 일조했다.

19대 대선을 앞둔 현재, 대선후보들은 여전히 장밋빛 공약을 내세운다. 예컨대 A후보는 공공부문에서 신규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4대강사업 수준인 21조원이 필요하다는데, 당연히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그런데 A후보는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하니, 증세 없는 복지에 발목이 잡혔던 박근혜 정부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심지어 군복무 기간을 현재의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한다니, 갈수록 입대인원이 적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어쩌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든다.

B후보는 '청년고용보장계획'을 시행한다고 한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해소 차원으로 2년 동안 월 50만원씩 총 1천200만원을 지원하고, 청년 구직자들에게 6개월 동안 월 30만원씩 180만원의 훈련수당을 지급한단다. 이를 위해서 드는 돈도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일 텐데, B후보 역시 증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C후보는 오히려 법인세를 인하한다고 하니 한숨이 나온다. 증세를 하겠다고 약속한 D와 E후보는 아쉽게도 당선가능성이 없고, 완주할지 여부도 판단이 안서는 상태다.

2016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2001년 122조원에서 2016년 627조원으로 5.1배 증가했단다. A나 B중 하나가 당선되고, 이들이 증세 없이 공약을 달성하겠다고 하면 5년 후 국가채무는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무섭다. 이게 다 네거티브를 지양하고 정책대결을 하라는 사회분위기 탓, 이렇게 외쳐본다. "정책대결 대신 그냥 네거티브 합시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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