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우리 안의 '먹고사니즘'

고영직

발행일 2017-05-01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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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직 문학평론가
김훈 소설 '공터에서'는 우리 안의 '먹고사니즘'에 관한 소설이다. 먹고사니즘은 오로지 지금 당장 나와 내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며 사는 일이 하나의 신앙처럼 작동하는 마음의 생태학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속 마동수-마장세·마차세 부자(父子)는 먹고사니즘의 생생한 문화적 실체라고 간주할 수 있다.

1910년생인 마동수는 일제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분단과 군사독재 시절 내내 자신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끝내 자식들에게 발 디딜 곳 하나 물려주지 못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표어 '식량 문제는 각자 해결하자!'라는 구호는 어쩌면 마동수 세대가 처한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잘 요약한다. 마동수가 임종을 앞두고 일제 시절 만주 길림으로 떠난 형 마남수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술회하는 대목은 소설의 핵심적 전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마동수와 그 세대의 삶에서 '생활'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직 '생존'의 공포가 마동수 세대의 삶을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마동수의 후속세대인 마장세·마차세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베트남전쟁 당시 전우 김정팔을 사살하고, 괌에서 고철무역을 하며 지내는 마장세는 누구보다 '물적 토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 또한 당연시한다. '먹이'를 벌기 위해 오토바이 배송을 하는 마차세 또한 '쯩(證)'도 없고 줄도 없기 때문에 세상 질서에 활착(活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한마디로 말해 오직 생존의 논리만이 마장세·마차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 마차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 김훈은 "사냥감은 보이지 않았고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흘러갔다"라고 쓰고 있다.

김훈의 '공터에서'는 지금은 노년 세대가 된 전후 세대의 삶을 통해 오로지 '밥이 노선'이 되어버린 지금·여기의 현실을 묘파하고자 한 소설이다. 작가는 마동수-마장세·마차세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의 진실이 그대로 역사의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고자 한다. 어느 누구도 한 개인의 인생과 내력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진실을 절대화하려는 지금·여기 노년 세대의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더 집요하게 탐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심판 이후에도 태극기 집회를 개최하며 불복하는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의 행태란 결국 먹고사니즘이란 반(反)지성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던가. 오히려 자신만의 아상(我相)을 고집하려는 노년 세대의 행태와 심리에 더 철저히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른바 꼰대 문화의 본질은 개인의 진실을 강변하고 후속세대에게 강요하려는 마음의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한다. 물론 소설 '공터에서'는 영화 '국제시장'의 경우처럼 노년 세대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알리바이로서의 독백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보며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부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의 진실과 역사의 진실을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지행합일의 삶의 양식을 다루는 노년문학은 불가능한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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