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이은구 前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1990~1992·1996~1998)

"한국지엠, 지역사회와 소통 아쉬워… 인천기업 모범 보여야"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7-05-1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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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이은구 전 한국지엠 노조위원장  인터뷰 공감8
이은구 전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이 1986년부터 올해 3월까지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에서 근무했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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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본향(本鄕)이라 할 수 있다. 1962년 인천 부평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인 '새나라자동차'가 들어섰다.

비록 일본 자동차를 반제품 상태로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었지만, 그 이전까지 미군 군용차 폐품을 활용한 수공업 형태의 '재생자동차'뿐인 국내 자동차산업에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1966년 '신진자동차'가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을 넘겨받아 자동차 생산을 재개했다. 이후 1976년 '새한자동차', 1983년 '대우자동차'로 바뀌면서 인천 자동차산업의 계보가 이어졌다. 대우그룹 부도사태 뒤인 2002년에는 미국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다. 지금의 '한국지엠'이다.

대우자동차 시절 두 차례의 노동조합 위원장(1990~1992년·1996~1998년)을 지낸 이은구(56) 씨는 올해 3월 한국지엠에서 희망퇴직했다.1986년 대우자동차 조립1부에 입사한 지 31년 만이다. 이은구 씨는 노조위원장으로서 회사 측과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한편으론 대우자동차가 누린 영광의 시간과 좌절의 순간을 함께 겪었다.

한국지엠의 시대도 그 출발부터 경험했다.

최근 이은구 씨를 만나 대우자동차부터 한국지엠까지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소회를 들었다. 인천 자동차산업 역사의 단면을 현장 노동자의 시각으로 살피자는 차원이다. 충남 아산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은구 씨는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인천으로 왔다.

아버지는 옛 북구 서운동(현 계양구)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고등학교 등록금조차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학교만 마치고 17세부터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정비 기술을 배우고, 중장비 자격증도 땄다. 군 제대 이후인 1986년 5월 대우자동차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제조업에 몸담았다.

"조립1부에서 시트, 헤드램프 같은 소모품을 조립하는 의장라인에 투입돼 '르망'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는 대우자동차가 GM과 지분을 나눠 갖는 합작회사였어요. 르망은 수출을 위해 GM이 개발하고, 대우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생산했습니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합작 관계에 있는 GM과 '월드카(World Car) 전략'이라 불린 국제적으로 분업화된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월드카란 현지 조건에 맞게 설립한 여러 나라의 공장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생산한 똑같은 차였다. 르망은 GM이 개발한 소형차 '카데트'의 국내 판매명이었다.

대우자동차는 르망을 계기로 1987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고, 내수 중심에서 벗어나 대량 수출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에스페로', '티코', '다마스' 같은 새로운 차량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1992년 대우자동차는 GM이 가진 지분을 모두 인수해 합작관계를 청산하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대우자동차는 승승장구하며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회사 내부적으로는 처우문제를 둘러싼 노사갈등이 심했다. 이은구 씨는 1987년 대우차 부평공장 파업 과정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의 진압을 피해 부평공장 본관 2층에서 추락해 팔다리 여러 군데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1년 동안 투병한 끝에야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땐 대기업이라고 해도 중소기업과 임금격차가 크지 않았고, 노동여건도 나빴다"며 "대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고 했다.

인천 이은구 전 한국지엠 노조위원장  인터뷰 공감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 서문 앞에서 인천 자동차산업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이은구 전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

이은구 씨는 1990년 11월 30세의 젊은 나이에 제11대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에 선출됐다. 집행부나 대의원을 거치지 않고 평조합원에서 위원장이 된 경우는 그가 처음이었다.

"열심히 싸우고 투병 생활하면서 현장에서 굳건하게 일했던 모습이 지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대우차가 에스페로도 개발하고, 막 뻗어 나가기 시작할 시기라 노사관계가 중요했어요. 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 임금인상, 경제민주화, 노동자 연대 같은 이슈가 사회적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도 1991년 2월 대우조선 파업 때 지지성명을 해서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광주교도소에 갇히고, 해직까지 된 이은구 씨는 계속된 노조의 투쟁으로 복직했다. 대우그룹 계열사인 대우조선에서 2년간 근무하고 대우자동차에 돌아오는 게 조건이었다.

그가 대우차 부평공장에 복귀한 것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내건 '세계경영'이 한창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던 1995년 5월께다. 이은구 씨는 이듬해 11월 제15대 대우차 노조위원장에 또다시 선출됐다.

이 시기 대우자동차는 '라노스'(1996년 출시), '누비라'(1997년 출시), '레간자'(1997년 출시) 등 자동차산업 역사상 유례없이 3개 차량 모델을 한꺼번에 개발하며 확장세를 이어갔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이 성공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때이고, 워낙 회사가 잘 나가서 노사관계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임금도 많이 올랐고요. 김우중 회장이 노조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다른 재벌 총수들과는 달리 노조와 직접 소통했고, 인간적으로도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우조선에 잠깐 근무할 때도 일부러 찾아와 안부도 물었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인 '김우중과의 대화'(2014년 출간)에서 "순번을 정해 직원들 집에서 아침을 먹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우리 회장님 만났더니 보통 재벌 회장과 다르다'고 얘기하고 다녀요. 그러니까 직원들 생각이 바뀌었죠"라고 했다.

노조 지도자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고도 언급했다. 김우중 회장은 학생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채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은 1997년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치고, 그해 11월 한국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이른바 'IMF 체제'에 돌입하면서 동력을 잃어갔다.

"당시 대우차 노조위원장이면서 대우그룹 노조협의회 의장이었습니다. 대우그룹 16개 계열사 노조를 다 불러서 고통분담을 하기로 한 뒤 임금동결과 후생복지 반납을 먼저 제안하고 정리해고를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제 임기가 끝난 이후인 1999년 결국 대우는 워크아웃(Workout)에 들어갔습니다. 1천800여 명 규모의 정리해고가 이어졌고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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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1992년 대우자동차에서 손을 뗀 지 10년 만인 2002년 대우자동차를 전격 인수하면서 국내시장으로 돌아왔다. 이은구 씨는 2006년 현장직을 그만두고, 한국지엠(당시 지엠대우)과 임직원이 함께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인 '한국지엠한마음재단'의 사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경야독해서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NGO학 석사를 취득한 뒤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는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무직으로 옮겼다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국지엠한마음재단으로) 갔다"고 했다.

이은구 씨는 한국지엠한마음재단에서 지역 취약계층을 도우면서 대기업과 지역사회의 상생방안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 국내 자동차산업의 본향에 터를 잡은 한국지엠에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김우중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지내서인지 인천경영자총협회나 인천상공회의소 같은 지역 경제단체와도 활발하게 소통했습니다. 대우그룹 본사를 송도유원지로 이전한다는 계획도 있었고요. 한국지엠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부분이 많지만, 대우차 때에 비하면 소통도 적고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재 인천시민들도 한국지엠에 대한 애정이 과거만 못한 것 같아요. 인천공장이나 군산공장 생산이 자꾸 줄어드니까 '철수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지엠은 철수설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노조를 비롯한 직원들과 시민들에게 투자계획을 명확하게 밝히고, 상생방안을 구축하면서 앞으로도 한국지엠이 인천 대표기업이자 모범적인 기업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은구 씨는 "당분간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려 한다"며 "어떠한 형태로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삶의 계획을 말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인천 이은구 전 한국지엠 노조위원장  인터뷰 공감12

■이은구 전 위원장은?
▲ 1961년 충남 아산 출생
▲ 1986년 대우자동차 입사(조립1부)
▲ 1990년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제11대 위원장
▲ 1996년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제15대 위원장
▲ 1998년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제2대 본부장
▲ 2017년 3월 한국지엠 입사 31년 만에 희망퇴직
▲ 전 인천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 측 위원
▲ 현 인천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이사
▲ 현 (사)인천사람과문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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