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이신사순: 신의를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한다

철산 최정준

발행일 2017-05-17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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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보통 표현하는 좋고 나쁨을 주역에서는 길흉(吉凶)이나 이해(利害)로 이야기한다. 길흉(吉凶)과 이해(利害)는 득실(得失)과 관련해볼 때 비슷한 개념이지만 길흉은 이해에 비해 좀 더 포괄적인 표현이다. 길(吉)이 행위의 명분을 얻어 적당함을 보장하는 표현이라면 이(利)는 그 결과로서의 성과를 지칭하기도 한다. 주역에는 이 둘을 아우르는 점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길무불리(吉无不利)란 표현인데, 길(吉)할 뿐 만 아니라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최고의 극찬이다. 그런데 이 점사에 대해서 공자는 그 이유를 이신사순(履信思順)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신의를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최고로 좋다는 것이다. 정말 신의를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하며 살면 그렇게 좋을까?

우리의 몸 구조를 보면 머리는 하늘을 향해있고 발은 땅을 밟고 있다. 머리로는 하늘을 생각하고 발로는 땅을 밟고 다닌다. 하늘에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차례에 따라 기후가 펼쳐지고 땅에서는 그에 발맞추어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생명활동이 진행된다. 하늘을 생각해보면 춘하추동이 단 한 번도 역행(逆行)하지 않고 순행(順行)함을 깨닫게 된다. 땅을 밟고 다니다보면 하늘을 따라 생장수장(生長收藏)이라는 생명활동을 이행하고 있음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하늘과 땅의 가운데 살면서 하늘을 보니 사순(思順)을 안할 수 없고 땅을 밟다보니 이신(履信)을 안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생각과 실천을 천지의 도리에 따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하늘도 돕고 사람도 도와 길무불리(吉无不利)가 된다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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