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50년 역사와 함께한 김세레나 수녀

폐허 위에 일군 병원
빈자·버려진 생명 품다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7-05-2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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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터뷰-성빈센트병원 수녀1
성빈센트 병원이 문을 연 지 50년 동안 환자들을 위해 평생 사랑을 실천한 백발의 김세레나 수녀가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응급실·수술을 앞둔 환자들
그들의 두려움 위로하며
'괜찮다' 다독여주는 게 간호의 시작
환자들은 그 순간을 잊지 않고 고마움 전해
그럴 때 힘 닿는 데까지 해보자고 스스로 다독여

세레나 수녀는 '수술실 기도하는 수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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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성성한 수녀와 맞잡은 손이 따뜻하다. 손으로 전해지는 훈훈한 온기가 온 몸에 은근하게 퍼졌다. 백발의 수녀는 성 빈센트 병원이 이 땅에 뿌리 내릴 때부터 함께 했다. 그 세월은 온통 환자를 간호하는 데 헌신했다. 아마도 그의 손이 따뜻했던 이유는 세월이 전해 준 '사랑' 때문이리라.

올해는 성빈센트 병원이 문을 연 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22일 수원 지동에 위치한 병원에서 김세레나(75·본명 김정선)수녀를 만났다. 백발의 수녀는 그 오래된 세월의 고락을 가장 잘 아는 이다. 세레나 수녀는 1963년 성빈센트 병원 설립을 구상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는 사회가 너무 열악했어요.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너나할 것 없이 가난에 허덕이던 때였으니까. 병자들은 넘쳐나는데, 의료시설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으니까 당시 수원교구에서는 작은 병원이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당시는 한창 전후 복구가 이루어질 때였다.

성빈센트2
1965년 3월 성빈센트병원 기공식1965년 척박한 의료의 불모지 수원에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한 자비의 씨앗이 뿌려졌다.

수도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조차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없을 만큼 모두가 헐벗은 시절이었다. 당시 수원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주교는 독일 파다본에 있는 성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에서 선교활동을 위해 선교지역을 물색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독일 수녀회를 설득했고, 병원 설립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수녀 지원자 9명을 독일 모원으로 파견해 수녀로 양성했다. 그것이 성 빈센트 병원의 초석이 된 성빈센트 수녀원의 출발이었다.

1965년 본격적인 병원 설립을 위해 아델하이드 수녀를 비롯해 3명의 수녀가 한국에 파견됐다. 세레나 수녀는 이 3명의 수녀과 함께 병원 설립을 도왔다.

그는 "원래 신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병원을 짓기 위해 온 독일 수녀들을 돕기 위해 간호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독일 수녀들은 매우 원칙대로 일하시는 분들이었는데, 병원 설립을 허가받으려고 당시 관계기관을 한달 동안 찾아가서 어렵게 병원을 세웠어요. 이 병원이 당시로서는 드물게 원칙대로 세워진 병원 입니다"라며 웃었다.

성빈센트
1967년 6월 가톨릭대학교 제5부속병원으로 개원총 5만3천110.7㎡ 부지에 연건평 1만5천800㎡,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8개 임상과, 195병상의 현대식 병원으로 개원했다.

1967년 6월 3일 개원한 성 빈센트 병원은 가톨릭의과대학 제5부속병원으로 195병상을 갖춘, 당시로서는 가장 현대적인 병원이었다. 경기남부지역 최초의 대학병원이기에 전국 각지에서 견학을 오기도 했다.

빈자를 위해 설립된 만큼 성빈센트 병원은 1967년부터 20병상을 책임 무료병동으로 정해 '자선진료소'를 운영했다.

"수원 전역이 허허벌판일 때지만 특히 연무동, 화서동 같은 곳은 극빈층들이 많았어요. 이 곳은 홍수라도 나면 곧장 폐허가 돼 천막을 치고 살아야 할 만큼 가난했죠.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이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았고 이게 소문이 나 나중엔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어요. 알코올중독증, 페니실린 쇼크 환자들이 특히 많이 왔는데, 여기서 치료를 받고 나갈 땐 혹시 밥이라도 굶을까 싶어 식구가 몇인지, 어디 사는지 등 형편을 물어보고 독일에서 들여온 물품을 챙겨주곤 했죠. 밤에는 수녀들과 함께 아예 보따리를 싸고 나가 빈민촌을 돌아다니며 구호물품을 나누어 주었어요."

성빈센트
2009년 경기도 제1호 말기암 환자 전문의료기관 지정2008년 보건복지부 말기암환자 호스피스 지원 상위기관으로 선정된 것에 이어 수준 높은 완화의료서비스를 펼치는 기관으로 인정받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말기암 환자 전문의료기관'으로 지정됐다.

당시는 병원 앞에 아기를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수녀들이 운영하는 병원이라고 소문이 나다보니 병원 앞에 수시로 아기들이 버려져 있었어요. 당시 원장 수녀가 이 아이들을 전부 거둬서 정성껏 돌봐주었어요. 가난해서 벌어진 일인데, 마음이 너무 아팠죠."

세레나 수녀가 간호과장으로 일하던 1978년부터 1982년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매일같이 시위를 하고 거리에는 최루탄 연기가 난무하던 때였다.

"서울 뿐만 아니라 수원에서도 거의 매일 대학생들이 민주화 시위를 벌였어요. 아주대 대학생들이 시위하다 경찰이 던진 최루탄을 맞고 병원에 실려오는 일이 수두룩했죠. 경찰 몰래 병상에 다친 학생들을 눕혀 치료해주는 일도 많았어요. 노동운동도 한창일 때라 간호사들이 노동쟁의에 나서기도 했어요. 병원에 고립돼 시위를 이어가던 간호사들에게 당시 교학감을 맡고 있던 수녀가 무조건 먹고 마실것을 들여 보내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간호사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다행히 며칠 지나지 않아 병원과 간호사들 간 요구사항이 합의돼 시위도 끝이 났는데, 그때도 교학감 수녀는 돌아온 간호사들을 무조건 안아주라고 하셨어요. 그때 많이 배웠어요. 사랑으로 감싸안는 일을."

성빈센트
2013년 12월 다빈치Si 로봇수술 도입수원지역 최초로 최신형 다빈치Si 로봇수술 시스템을 도입해 첨단의료를 향해 한발자국 더 나아갔다.

세레나 수녀의 세월은 병원의 역사이기도 하고 우리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온전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기도 하다.

"1995년에 병실마다 흩어져 있는 암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기도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기초간호를 시작했어요. 성빈센트 병원의 '호스피스' 진료의 시초라고 볼 수 있어요. 당시만 해도 호스피스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할때 였어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 하는 암환자와 그 보호자들을 숱하게 봐왔어요. 특히 보호자들의 경우 환자 사후에 2차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호스피스는 수녀 뿐 아니라 의사, 간호사, 보호자, 환자 모두가 한 팀이 돼 환자가 삶의 의미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어쩌면 삶의 끝 자락일 지 모르는 순간, 주어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도록 돕는 일은 평생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수녀가 반드시 해야 했던 숙명이었을 것이다. "우리 병원이 호스피스 진료를 하는 건 마치 '신념'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꼭 해야만 하는 운명이죠."

성빈센트
2017년 암병원 개원2017년 개원하는 암병원을 통해 환우의 육체적, 정신적 치유뿐만 아니라 영적인 치유까지 돌보는 '빈센트 케어 시스템'을 실현하고, 실력 있는 지역병원, 안전하고 믿음을 주는 병원으로 나아갈 것이다.

일흔을 훌쩍 넘어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아직도 세레나 수녀는 응급실과 수술 대기실에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크게 다쳐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아이들이 너무 놀라서 겁에 질려 있는 걸 보았어요. 아이를 안아주며 '괜찮다' 다독였어요. 이게 간호의 시작입니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 수술을 앞둔 환자들의 두려움을 안아주는 것. 그 모습이 안타까워 사랑으로 시작한 일인데, 환자들은 그 순간을 잊지 않고 꼭 고마움을 말합니다. 그럴 때 더 용기가 나고 힘 닿는 데까지 해보자고 스스로 다독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수술실 기도하는 수녀'라는 별명도 붙었다.

공감 인터뷰-성빈센트병원 수녀3

50년의 긴 세월을 이야기 하는 세레나 수녀의 얼굴은 행복해보였다. 그 긴 세월을 거쳐 이제 빈센트 병원은 암 병원을 개원해 더 큰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올해는 성빈센트 성인 탄생 400주기이면서 빈자들을 위해 이 땅에 뿌리내린 우리 병원이 50년이 되는 참 뜻깊은 해입니다.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랑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잊지 마세요."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성빈센트 병원 주요 연혁
-1965년 3월 성 빈센트 병원 기공식
-1967년 6월 가톨릭대학교 제5부속병원으로 개원
-1967년 11월 자선진료 개시
-1999년 6월 신축된 본관(현 성 빈센트 병원)으로 이전
-2009년 1월 경기도 제1호 말기암 환자 전문의료기관 지정
-2012년 12월 '사랑으로 하나되는 세계 속의 성빈센트' 새 비전 선포
-2015년 6월 암병원 건립 및 본관 증축 기공
-2017년 1월 개원 50주년 슬로건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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