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12]경방삼양그룹(완)-11 타임스퀘어로 변신

옛 경방공장 터에 '초대형 복합쇼핑몰'

경인일보

발행일 2017-05-30 제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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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방직업 하향세' 대처
백화점·홈쇼핑 등 '사업다각화'
영등포에 신개념 유통단지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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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사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경성방직은 1962년부터 해외시장으로 눈길을 돌려 그해 10월에 창립 이후 최초로 미국에 면직물 2만8천250달러를 수출했다. 이후 수출액은 1966년 100만 달러로 늘었다. 1968년에는 미국의 듀퐁과 특약을 맺고 데크론섬유를 독점 수입했다.

1965년에는 이토추 미국법인과 교섭을 벌여 연리 6%의 미화 118만1천95달러의 장기차관자금으로 방기 1만추와 직기 206대를 도입했다. 김용완은 관행이던 정부 혹은 은행의 지불보증을 배제하고 자체신용만으로 이토추와의 차관도입 거래를 성사시켰다.

1967년에는 영국의 PLATT BROS LIMITED와 장기차관도입 계약을 성사시켜 1969년 최신 방기 6천300추를 확보했다. 1968년 11월에는 부산 동래구 재송동 310일대에 공장부지 3만2천평을 매입했다. 1970년에는 경성방직의 상호를 주식회사 경방으로 바꾸고 국내의 대표적인 섬유수출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1975년에 김용완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김각중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각중은 김용완의 1남4녀 중 장남으로 1944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이과를 졸업하고 1964년 미국 유타대학에서 이론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5년에 부친의 뒤를 이어 경방 회장에 취임했다.

1977년에는 경방기계의 전신인 (주)새한패시픽을 인수했으며, 1981년 6월 일본 오사카(大阪) 지점을 현지법인 케이보재팬으로 승격해 설립했다. 1980년대까지 용인, 반월, 광주에 대규모 공장을 준공해서 1987년에는 1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1990년대 들어 방직업이 하향세로 접어들자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 주력함과 동시에 유통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서둘렀다. 1990년 (주)경방어패럴을 설립했고, 1992년에는 (주)경방프라자쇼핑센타를 설립한 뒤 이듬해 경방유통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94년에는 경방 영등포공장 인근에 경방필백화점을 개점했다.

2001년에는 우리홈쇼핑을 개국해 2006년에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2009년 9월 서울 영등포구 옛 경방공장 터에 연면적 37만㎡, 매장면적 12만㎡의 초대형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준공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신개념 복합유통단지로 쇼핑몰, 영화관, 백화점, 서점, 호텔 등 상업·업무·문화·레저가 어우러진 새로운 도시형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다.

2010년 4월 2세 경영자인 김각중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고 장남 김준 부사장이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면서 경방은 3세 경영 체제로 전환됐다. 김각중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김준은 장남, 김담은 차남으로 모두 경방 경영에 관여하고 있었다.

경방삼양그룹의 역사는 2017년 정확히 창업 1세기를 맞이했다. 김성수가 1917년에 인수한 경성직뉴를 모체로 점차 사업을 확장해서 굴지의 대기업집단을 형성한 것이다. 일제 말기에는 재벌에 준하는 그룹을 형성했고, 해방 후 국내의 여타 재벌들과 같은 성장패턴으로 몸집을 불렸다.

삼양그룹의 성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삼성, 현대, LG, SK 등에 비해 외형이 빈약할 뿐 아니라 다각화 내용도 단순하다. 이런 더딘 성장은 일제하에선 토착기업이란 핸디캡 탓에, 해방 이후에는 야당계 기업 혹은 일제하에서 부일한 기업가 등으로 각인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사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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