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문학계 거목 시인 고은 혼돈에 서다

이윤희

발행일 2017-06-01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이중규제에 시달리는 광교산 일부 주민들
무상 제공한 주택 거론 시인향해 "떠나라"
생각지 못한 고민 안겨드렸나 싶어 '착잡'


2017060101000030500110071
이윤희 문화부장
내기라도 할 기세다. 조금 보태서 얘기하면 말이다.

지난 2013년부터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 고은 시인과 관련해 최근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정작 시인 본인은 아무런 입장표명도 하지 않고 있는데 수원을 '떠난다' vs '떠나지 않는다' 식으로 말들이 무성하다.

일련의 일들을 정리해보자. 지난달 중순께 수원 광교산주민대표협의회 소속 광교산 주민들은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법 등 이중 규제 때문에 주민들은 주택 개·보수조차 마음대로 못하는데, 수원시가 시인은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며 고은 시인의 광교산 퇴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시인의 집 앞은 물론 수원 광교산 입구에 수원시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주택을 거론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을 향해 떠나라는 내용의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수원시 주민자치위원장들을 비롯 수원지역 문인들은 "고은 시인을 지키고, 문학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지역을 대표하는 수원문인협회의 경우, 지난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나라 문학계의 큰 별로, 인문학 도시 수원의 문화브랜드를 더 높이고자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분이다. 그런데 지금 몇몇 시민의 금도를 벗어난 행동에 우려가 깊다"고 말했다. 사실 해당 협회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수원시가 대표성,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시민 혈세인 부지까지 제공해가며 고은 시인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기만 행정"이라면서 "고은문학관이 아닌 수원문학관을 건립해야 한다"며 고은 시인 측과 날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누구보다 앞장서 시인을 지키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문단 입장에서 맏어르신 같은 분을 휘둘리게 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데 공감했을 터이다.

솔직히 사안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이번 일은 이중 규제에 시달리는 일부 주민들이 격한 감정 속에 주장을 펴려다 일어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 시인 본인도 이렇다 할 언급이 없으시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거처 문제를 놓고 공론화되는 양상이다. 혹자는 시인이 지인들을 통해 '수원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의중을 보였다'는 얘기도 있고, 또 다른 쪽에선 '더 이상 수원에 있을 수 있겠냐는 심경을 털어 놓았다'는 정반대의 말까지 나돌고 있다. 도대체 시인의 의중을 전달한다는 '지인'들의 정체가 누구인지도 궁금하고, 시인은 한 분인데 왜 다른 얘기가 나오는 것인지도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발 더 나가 최근엔 시인이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자, 일부 군산시민은 '이번 기회에 시인을 모셔와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시인이 지난달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만인의 방'을 조성키로 하고, 시인의 소장품을 기증받아 안성의 서재를 재현하기로 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 서울시와도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혹스럽고 급박해진 것은 수원시가 됐다. 이에 염태영 수원시장은 지난 30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수원시가 불법적으로 한 게 없다.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물을 걷어차려는 행동에 시가 아무 일도 못 한다면 무슨 꼴이겠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수원시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렇다 할 대책을 내 놓기도 애매하고 복잡할 심경일 것이다.

시인 입장에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름 수원지역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안정을 찾으며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에서 흔들어 놓다니'. 이런 심정이 아닐까. 집 앞에 있는 현수막을 볼 때도 착잡할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시인의 거주지는 수원이지만 그는 수원만의 시인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고은' 시인이라는 존재를 모르는 이는 적을 것이다. 그는 그 자체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계 거목이다. 시인에게 문학적 고민의 깊이를 더하게끔 수원으로 모셔왔는데 생각지 못한 고민을 안겨드리는 것 아닌가 마음이 좋지 않다.

/이윤희 문화부장

이윤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