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앵글 시즌Ⅰ 성곽을 보다·(7)파사성]달아나는 저 강물 부러워… 산위를 흐르는 역사에 발을 담근다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7-06-13 제17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하이앵글] 시즌Ⅰ성곽을 보다-여주파사성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와 양평군 개군면에 걸쳐져 있는 파사성은 사적 제251호로, 신라 제5대 임금 파사왕 때 처음 쌓은 석축산성으로 전해진다.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져 평야와 구릉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요새로 꼽히며 가장 높은 곳은 6.25m, 낮은 곳은 1.4m가량 된다. 둘레는 1천800m 정도다.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신라 파사왕 축성 알려져, 2천년간 수차례 수·개축
정상 서북쪽 아래 암벽에 '마애여래상' 사찰터 짐작
유성룡 승군 동원 보수·빼어난 경치 감탄 詩로 남겨

7 여주 파사성


산의 굽잇길과 강 위로 곧게 뻗은 다리가 서로 마주 본다. 산과 강의 조화가 오가는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운다. 조선의 명재상 유성룡은 파사성의 경치를 두고 '파사성 위에 풀이 무성하고 파사성 아래에는 물이 둥글게 굽어 돈다.

봄바람은 날마다 끝없이 불어오고 지는 꽃잎은 무수히도 성 모퉁이에 날린다'는 시를 남겼다. 지금 우리가 파사성을 거닐며 정취에 취하고 선인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과 같은 시간을 그도 지나왔던 것이다.

여주 파사성 마애여래입상
파사성 서북쪽 옆산의 정상 아래에는 암벽을 수직으로 깎아 5.5m 높이의 불상을 새겼다. 이 불상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1호인 양평상자포리마애여래입상(楊平上紫浦里磨崖如來立像)이다. 상당한 크기의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신체의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모습이다.

파사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졌다. 신라 파사왕(80~112) 때 축성해 파사성이라 명명했다는, 그래서 산 이름도 파사산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대 파사국의 옛터라는 말도 전해 내려온다. 2천여 년 전의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만큼 파사성의 역사는 오래됐다. 오래됐으나 낡지 않고 오랫동안 쓸모와 위용을 간직했다.

하이앵글 여주 파사성3
파사성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남한강.

축성 이후 수차례 수·개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초창기의 성벽과 이후 수리를 거친 성벽이 명확히 구분된다. 성의 정상부에서 서북쪽 아래에는 고려시대의 마애여래상 조각이 남아있다.

이 마애불 부근에 평평한 대지가 있고 그 아래서 기와편이 수습됐다. 파사성과 관계 있는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임진왜란 때는 유성룡의 뜻으로 승군장 의엄(義嚴)이 승군을 동원해 둘레 1천100보의 산성을 수축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여주 파사성 남쪽 성벽
파사성 남쪽 성벽.

파사성은 산길과 물길을 동시에 내다볼 수 있는 천혜의 요새로서 한강 이남을 지켜왔다. 오랜 시간과 인간의 노력과 잘 벼른 물질의 퇴적이 성을 지금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단단함이 파사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락한 휴식을 준다. 볕이 더 강해지고 잎이 더 무성해질수록 그럴 것이다.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민정주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