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원기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

"운동밖에 모르는 후배들, 사회생활 적응 돕고 싶어"

이경진 기자

발행일 2017-06-1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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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후배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김원기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은 "미래세대를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보험 영업으로 제2의 인생 시작했지만
빚보증에 전재산 날려 방황하기도
재소자와 만남이 터닝포인트로
도전 메시지 전하며 치유의 힘 얻어
"가난했지만, 나의 꿈은 가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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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밤하늘 등불이 나를 밝혔다. 진심과 겸손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원기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 성장했고, 나머지 인생은 함께 더불어 사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LA올림픽에서 효자종목인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김원기 선수는 전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다. 무엇보다 금메달이 꾸준한 노력과 굵은 땀방울이 이루어낸 값진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 후일담은 국민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며 인기를 누렸다.

김 회장은 "시합하다가 죽을 것을 각오하고 한 게임 한 게임 이겨나간 것이 기적같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성과를 가져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직후인 1985년 1월 삼성생명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사회를 제대로 알고 배우자는 생각에서 운동팀을 떠나 필드경험에 뛰어들었던 것. 보험모집·앙케트조사 등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어쩌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날 경우에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고 한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실제 지난 2000년 10월 삼성생명 보험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말단 보험설계일에서 총무과 대리·영업소장·본부 업무과장·교육담당 차장 등을 거칠 정도로 능력발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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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LA올림픽이 끝난 후 귀국한 선수단이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당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원기 선수와 어머니의 모습. /김원기 회장 제공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운동밖에 몰랐던 김 회장은 사회적응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까운 사람의 빚보증 선 게 잘 못되는 바람에 전재산을 날린 것은 물론 한동안 계속 그 빚을 갚아야 했고, 막상 갈 데가 없어서 선배가 하는 세차장 등에서 수개월동안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현재 인생의 금메달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교도소의 재소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것.

김 회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고 한다. 은퇴 후 주변의 도움으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이어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뭔가 허전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찾은 게 재소자들과의 만남이었다. 김회장은 법무부 교화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오랫동안 이 일을 쉬지 않고 반복해왔다.

현재 '도전, 나는 나를 넘어섰다'란 주제로, 영등포·안양·인천·춘천 등 한해 수십여차례의 전국 교도소 순회 강연을 하면서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재소자들을 상대로 국가대표가 되기까지의 인생역정과 자신만의 성공철학을 소개하며 청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어두운 터널로 들어갔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한다.

김 회장은 "그들에게 잘난체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과 부족한 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야기를 풀어주면서 재소자들의 마음을 연다"며 " 비록 가난했지만, 나의 꿈은 가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의 교도소를 돌며 사실상 무료 강연을 펼치자 사람들은 제가 하는 걸 '봉사'라고 한다"며 "하지만 교도소 강연을 돌면서 내가 얻는 것이 더 많다. 그들이 손편지를 나에게 전달할 때 그 치유의 힘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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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함평군 레슬링협회장과 함평중·함평골프고 레슬링팀 선수들이 함평군 체육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원기 회장 제공

자식이 없는 김 회장은 지난 1998년부터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 모교 후배들을 마음으로 품고 부모역할을 하고 있다. 레슬링 선수 7명, 여자 태권도선수 2명 등 총 9명에 이른다.

김 회장은 "중2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당시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며 "우리 후배들을 위해 무슨 역할을 할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모·편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들의 부모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자식들에게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인생계획과 인생진로 등을 함께 고민한다. 한달에 30만원씩의 지원금도 주고, 연말에는 자식들을 다불러 안산 평화의집, 을지로 거리의 천사, 음평 천사원, 태릉선수촌 등을 3박4일동안 돌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솔선수범을 보이기도 한다.

10여명의 자식을 보호하는 것은 김 회장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초기에는 정말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이 많았다"면서도 "지금은 보람을 느낀다. 최근에 첫째 아들과 셌째아들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그 무엇보다 힘든시기를 거쳐 훌륭하게 성장한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지원 덕분인지 함평중학교 레슬링부가 최근 열린 제46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레슬링 대회에서 남자부문 금·은·동메달을 모두 휩쓸면서 레슬링 본고장 함평의 명예를 다시 한번 떨쳤다.

김 회장은 꿈이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

그는 자신의 경험이 쓰라렸기에 후배들은 자신과 같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김 회장은 "운동선수는 사회를 모른다. 사회를 살아 가는 전반적 지식이나 방법이 부족한 게 사실. 선수들이 언젠가는 운동을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적응 프로그램, 컨설팅 등이 없어서 답답하다"며 "그것도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길이 어두운 사람들을 위해 등불을 비춘다는 마음을 갖고 보니 제앞이 환해지는 이치를 깨달았다. 그러나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이경진기자 lkj@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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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13
■김원기 회장은?

-경력

▲1962년 전라남도 함평출생

▲함평농업고등학교, 전남대학교 졸업

▲전남대교육대학원 운동생리 석사, 경희대체육대학원 체육복지정책 박사

▲삼성생명 교육차장

▲함평군 레슬링협회장

▲엔에스하이텍 대표이사

▲꿈메달 스포츠봉사단 회장

-수상

▲1983 터키야사도구 국제대회 은메달(터키)

▲1984 콩코드국제대회 금메달(미국)

▲1984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미국)

▲1985 슈퍼챔피언대회 은메달(일본)

▲1984 체육훈장(청룡장)수상

▲1985 대한민국 최고상 수상

▲1989 성곡문화재단 체육대상 수상

▲2004 선행칭찬본부 칭찬상 수상

▲2011 미래지식경영원 최우수 기업 선정

▲2011 창업진흥원 혁신적 기업가상 수상

▲2012 재능기부 인증업체 선정

▲2013 서울지방조달청 표창장

▲2013 대한민국예술·문화인 대상(체육부문)

▲2014 전남도지사 표창(기업봉사)

▲2015 한국창조경영인협회 최우수 신창조인상 수상

▲2015 신지식인 인증(문화예술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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