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나의 詩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詩

권성훈

발행일 2017-06-1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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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고 싶어

큰 걸음으로 걷고 싶어

뛰고 싶어

날고 싶어



깨고 싶어

부수고 싶어

울부짖고 싶어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싶어

까무러쳤다 십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

최승자(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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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시는 모든 사물의 이름과, 생각 그리고 언어를 통해 현상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사물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언어가 되기 전 그것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몸짓을 가진 사물들은 누군가 불러주기를 원한다. 만약 당신의 육체와 정신이 매여 있거나, 갇혀 있다면 당신을 향한 목소리는 분명 구원의 소리일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당신을 부르는 소리에 '움직이고' '큰 걸음으로 걷고' '뛰고' '날고 싶어' 했던 수많은 날들이 해방되리니. 또한 그것이 '육체적 벗어남'이라고 한다면 '깨고' '부수고'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고' '까무러치고' 싶은 것은 '정신적 벗어남'이 되는 것으로써 자유에의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 오히려 속박이 될 수도 있으니, 이때 깊은 성찰과 오래된 지혜가 필요하겠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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