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九峰山) 위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둘레 1천200m. 지난 1971년 사적 제217호로 지정됐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
삼국시대 중국 오가던 해상 실크로드 관문, 신라가 차지하며 통일 발판
성황당 헐자 망해루 터·4차 발굴서 유물 1천여점… 많은 부분 묻혀있어
8 화성 당성
지난해 가을부터 반 년 동안 진행된 4차 발굴조사가 끝나면서 당성에는 오랜만에 고즈넉한 여유가 흐른다. 당성은 백제 시절에는 당성군으로, 고구려 시절에는 당성으로 신라가 차지한 뒤에는 당항성으로 불렸다. 무슨 이름으로 불렀든, 삼국은 당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신라는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 당성 지역이 필요했다. 또한 당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676년 삼국을 통일하는 발판이 된 중요한 지역이다.
가장 먼저 축성된 성벽은 구봉산 정상에서 봉화산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테뫼형으로 축조됐다. 테뫼형이란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일정 공간을 돌린 형태다. 테뫼형은 보통 성벽이 7∼8부 능선을 따르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시루에 흰 띠를 두른 것 같다 하여 시루성이라고도 한다.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화성 당성 현장. |
정상부의 협소함을 극복하기 위해 신라 말에 구봉산 동북쪽 능선을 따라 포곡식 성벽을 신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계곡 쪽에는 수구터가 있다. 수구터 안쪽에는 지금도 샘이 있어 물이 사철 나온다. 서벽에 연한 정상부에는 노목이 우거진 숲이 있고 여기에 성황당이 있었다.
발굴조사를 위해 성황당을 헐자 망해루인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드러났다. 먼 바다를 내다보던 산성의 망해루가 성황당이 됐다. 내다보는 사람의 마음에 담겼던 것들은 아직 많은 부분 묻혀있다.
구봉산 당성내 자리잡고 있는 사찰 신흥사. 1934년에 창건됐다. |
발굴조사는 1990년대부터 시작돼 1차 조사에서 성벽과 건물지, 2차에서 동문지, 명문기와 40여점이 발견됐다. 지난 4차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유구와 유물 1천여 점을 확인하면서 당성이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이었음을 재입증하게 됐다.
조차는 12차까지 계획돼 있다. 아직 초반인 것이다. 앞으로 당성이 무엇을 더 내보일 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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