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맥아더 장군의 오판

이한구

발행일 2017-06-21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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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본 국력 '아직 12세소년 수준' 평가
해체된 재벌 '게이레츠' 란 새 그룹형태 부활
독점체제 규제못해 결국 재벌정신 말살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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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1605년 12월말 영국의 귀족모험가 에드워드 미셸본 선장이 이끄는 240톤의 타이거호가 말레이반도 연안을 지날 때 낯선 정크선과 조우했다. 배에는 작고 땅딸막하며 거의 무표정인 80여명의 남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일본인을 생전 처음 본 것이다. 일본인들은 영국인 선원들을 자기 배로 초대해서 극진히 접대했다.

미셸본은 답례로 일본 선원들을 타이거호로 초대해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주흥이 무르익자 일본인들은 별안간 악마로 돌변해 영국인들을 칼로 마구 베었다. 그러나 일본인 해적들은 영국인 창병(槍兵)들과는 상대가 안됐다. 일본 선원들은 사면초가에 빠지자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러대며 일제히 영국군 측으로 돌진해 장열하게 최후를 마쳤다. 22명의 일본인 중 단 한명만 살아남았다.

영국인들은 이 볼품없고 왜소한 동양인들의 집단 광기(狂氣)에 혀를 내둘렀다. 미셸본 선장이 일본인들의 겸손한 외양에 속아 화를 자초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흉포하기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동남아 전 지역에서는 일본선원들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반드시 무장해제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미셸본은 몰랐던 것이다.

영국인 작가 가일스 밀턴이 대항해시대 유럽의 여러 모험상인들의 일지 등에 기초해서 완성한 '향료전쟁'의 한 장면이다.

일본의 속담에 '밤길도 함께 가면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다. 일본인들의 절제는 세계최고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도 으뜸이다. 또한 작업 중에는 대체로 무표정이어서 상대방이 감정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축제(마쯔리) 때는 무표정이 사라진다. 억제되었던 감정이 폭발해 자유분방하게 행동한다. 반나체의 남성들은 몇 톤이나 되는 미고시(神輿; 신위를 모신 가마)를 짊어진 체 서로 당기고 거칠게 소리 지르며 열정을 불태운다.

일본인 특유의 집단최면 즉 '감바로우(최선을 다해 끝까지 해보자)'라는 정서적 일체감이 낳은 결과이다. 자칫 감바로우정신의 방향이 바뀔 경우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엄청난 일도 군중심리에 의해 일으킬 개연성도 없지 않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한 가지 일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다 보면 주변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무서운 밤길도 동료와 함께 가니 즐거운 것이다.

1945년 8월 30일 일본 도쿄 인근의 아쓰기(厚木) 해군비행장에 내린 미 극동군의 맥아더 사령관은 당시 일본의 국력에 대해 '일본은 아직 12세의 소년' 수준으로 평가했다.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민들이 경악하기도 했으나 일본은 여전히 미성숙하고 작은 섬나라로 비춰진 것이다.

맥아더는 어린 소년이 더 이상 흉포한 괴물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일본적인 것들을 없앴다. 가장 먼저 손댄 작업이 일본군대와 재벌(자이바츠)의 해체였다. 일본군과 재벌은 전혀 별개의 조직이나 일본특유의 가(家)의식으로 똘똘 뭉친 공동운명체였던 것이다. 미쓰이, 미쓰비시(三稜), 스미토모(住友), 야스다(安田) 등의 재벌을 공중분해하는 것이 미국의 전쟁목적 중 하나였다. 연합군총사령부(GHQ)는 각 재벌의 창업자일족의 소유지분을 강제로 일반대중에 매각했다.

그러나 전후에 해체된 재벌은 1960년대부터 게이레츠란 새로운 그룹형태로 부활했다. 일본경제 개방에 대비한 자국 기업들간의 합종연횡이 명분이었다.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그룹 등에서 분리된 기업들이 다시 끼리끼리 뭉친 것이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회동해 우의를 다짐은 물론 주식을 맞교환하거나 어려울 때에는 서로 돕는다. 미쓰비시 패밀리의 사장 49명은 매월 둘째 금요일 도쿄에서 오찬회를 연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회동해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게이레츠는 법적 조직체가 아니어서 정부는 이 독점체들을 규제할 수단이 없다.

미국은 일본 재벌들의 정신까지는 말살하지 못했다. 맥아더의 일본에 대한 섣부른 단견이 일본의 독점자본주의의 부활을 초래했던 것이다. 일본의 군사대국 복귀만 남았는데 미국인들이 이를 어찌 생각할지?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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