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
이 가운데서도 김말봉(1901~1961)의 '찔레꽃'(1937)은 뚜렷한 선악 이분법, 도덕적 지상명령, 삼각관계, 매력적 신여성의 헌신,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 등 통속멜로가 요구하는 장르의 관습과 클리셰를 완성한 연애소설의 전형이다.
'찔레꽃'은 "보아주는 이가 없어도 홀로 피어,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향기를 보내주는" 평범하고 고결한 꽃―바로 여주인공 안정순의 알레고리다. '찔레꽃'은 안정순과 애인 이민수 그리고 조경애 · 조경구 · 윤영환 등 다양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갈등과 오해의 중층적 삼각관계를 다룬다.
방학기의 동명 역사만화를 원작으로 한 TV드라마 '다모'(2003)처럼 갈등구도의 중층성과 참신성이 돋보인다.
예컨대 '다모'의 대중성은 황보윤-채윤 커플 사이의 신분적 갈등, 채윤-장성백 커플 사이의 인륜적 갈등(후일 이 둘은 오누이였음이 밝혀진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녹림(綠林)의 수괴 정성백과 사회질서를 지키려는 포도청 종사관 황보윤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 만들어낸 성과다.
'찔레꽃'에도 단선적 삼각관계가 아니라 정순-민수-경애, 경애-민수-영환, 민수-정순-조만호, 정순-조만호-조만호 처 등 여러 겹의 삼각관계가 다채롭게 얽혀 전개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질환(정신병)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은행의 두취(은행장)인 조만호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는 정순과 몰락한 반가의 후예인 민수의 고난에 덧붙여 금력을 앞세운 윤영환과 조만호의 공세가 가세하면서 소설은 '장한몽'에서 발화한 '돈이냐 사랑이냐'하는 통속드라마의 관습을 반복한다.
정순과 민수의 결렬된 안타까운 사랑은 오해의 해소에도 끝내 복원되지 못하지만 경애와 민수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양보하는 정순의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작품의 모럴을 확보하며 안정순과 조경구의 결합 가능성을 암시함으로써 통속소설 특유의 행복한 끝내기마저 완수해낸다.
'찔레꽃'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보편화로 더 이상 '춘향전' 같은 전통서사가 불가능해졌음을 알려주는 지표이자 잠시나마 식민지라는 우울한 현실을 잊게 하는 환각성과 함께 상류 소비사회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동경을 자극하고 만족시켜준 한국의 신문소설이며 통속소설의 장르규범을 완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획기성을 갖는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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