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앵글 시즌Ⅰ 성곽을 보다·(9)죽주산성]제국도 감히 넘지 못한 성벽, 고목은 노병처럼 버티고 있었다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7-06-27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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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앵글 안성 죽주산성
비봉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죽주산성(경기도 기념물 제69호). 본성은 1.7㎞이고, 외성 1.5㎞, 내성 270m로 세 겹의 석성(石城)이다.

"한 명의 군사로 적을 막는다" 철옹성
고려 후기 송문주, 몽골 침입 물리쳐
성 안엔 장군 전공 기리는 사당 남아

9 안성 죽주산성


비봉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죽주산성은 좀처럼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철옹성으로 오랜 시간 우리 국토를 지켰다. 조선 선조 때 한음 이덕형은 임금에게 "죽주산성은 단 한 명의 군사로도 적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죽주산성이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후삼국시대다. 고려 후기에는 송문주 장군이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이름을 날렸다.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백성들과 함께 죽주산성으로 피란한 그는 몽골군의 공격법을 미리 알고 기습해 물리쳤다.

안성 죽주산성 석불입상과 삼층석탑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과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8호·제97호).

백성들은 그를 '귀신' 또는 '신명(神明)'이라 불렀다. 송문주 장군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들을 유난히 총애하는 어머니 때문에 화가 난 그의 누이가 그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송문주는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송아지를 끌고 개성에 갔다가 다음날 아침밥 먹기 전에 돌아오고 누이는 밤부터 성을 쌓기로 하여 지는 사람이 죽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누이는 벌써 성을 다 쌓고 성의 남문을 달 때인데 개성에 간 송문주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안성 죽주산성 동문
죽주산성 동문.

어머니는 누이에게 뜨거운 팥죽을 먹고 하라고 권했다. 누이가 팥죽을 먹고 성문을 달려 할 때 송문주가 돌아왔다. 누이는 어머니에게 속은 것을 알았으나 약속을 지켜 죽었다. 성 안에는 송문주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사진 4)이 남아있다. 이밖에 성 안팎으로 많은 문화유적을 볼 수 있다.

안성 죽주산성 송문주 장군 영각
송문주 장군 영각.

고려 태조 왕건의 진전사찰(眞殿寺刹, 왕의 초상을 모신 전각이 있는 절)이었던 봉업사지와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 등이다. 안성은 예로부터 대로가 나고 사람이 모여 살거리와 볼거리가 많았다. 그래서 이야깃거리도 많은 동네다. 산길을 따라, 성곽을 돌며 다채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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