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17]화신그룹-5 화신그룹의 형성

연쇄점 도전, 조선 굴지 상업자본가로

경인일보

발행일 2017-07-0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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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연쇄점
'화신50년사'에 수록된 화신연쇄점 본사 전경.

국내 최초 사업 350개 모집 결실
지물·상회 등 잇단 경영 대성공
길주군에 레이온펄프 공장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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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사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박흥식은 1934년 2월 (주)화신상회를 (주)화신으로 변경하고 6월에는 화신연쇄점(和信連鎖店)을 설립하여 국내 최초로 연쇄점사업(chain store system)을 개시했다.

이 회사는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단순화해서 높은 유통 이윤을 얻어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사업 개시와 함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동원해서 연쇄점 설치계획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부동산을 담보로 상품을 공급해주는 조건을 내걸고 연쇄점 모집을 진행한 결과, 1차 모집 마감일인 그해 7월 15일까지 전국에 총 350개의 연쇄점을 지정하는 성공을 거둬냈다.

박흥식은 연쇄점 신청자들로부터 거둬들인 부동산 문서를 담보로 식산은행(현 산업은행)에서 3천만원(圓)의 거액을 융통받아 일본의 대(大) 메이커들과 접촉, 상품의 안정적 루트를 확보했다.

쌀값으로 환산하면, 박흥식이 융통받은 3천만원의 현재 가치는 약 3천700억원에 해당한다. 박흥식은 연쇄점 사업을 통해 단기간에 조선 굴지의 상업자본가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흥식이 연쇄점 사업을 벌인지 2개월 만인 1935년 1월 27일 밤에 화신백화점에 화재가 발생해 건물 대부분과 상품을 태워 50만원 가량의 손해가 발생했다.

이때 박흥식은 재난을 기회로 전환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경황 중이던 직원들을 독려해서 화재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점과 1주일 이내로 영업을 재개하겠다는 내용으로 일간신문에 광고를 했다.

그리고 우원일성(宇垣一成) 조선총독의 협조를 얻어 옛 종로경찰서 건물을 빌려 2월 8일에 화신상회를 다시 개점해 시민들을 또다시 놀라게 했다.

화재로 폐허가 된 곳에는 지하 1층, 지상 6층의 콘크리트 빌딩을 지어 1937년 11월에 완공했다. 1935년 12월 1일에는 화신 평양지점을, 1938년 6월 1일에는 화신 진남포지점을 각각 오픈하며 사업을 확장해 갔다.

박흥식은 선일지물과 화신상회, 화신연쇄점 경영에서 연이은 대성공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차제에 그는 관계 및 재계 인사 등과 교류의 폭을 넓혀 1935년 초에 일본 제지업계의 으뜸인 왕자제지가 공칭자본 2천만원으로 설립한 북선제지(北鮮製紙)화학공업주식회사에 발기인 및 취체역으로 참여했다.

일본 내의 레이온 펄프 수요 급증에 따른 심각한 원료부족을 배경으로 함경북도 길주군에 연생산량 3만7천t의 레이온 펄프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이곳에 공장을 건설한 것은 길주 일대의 울창한 낙엽송, 삼송(杉松), 활엽수 등을 원료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선일지물은 갈수록 증가하는 지물(紙物) 수요를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어 1935년에 삼화제지(三和製紙)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함경북도 청진에 제지기 3대를 갖추고 연간 2만t의 생산능력을 갖춰 선일지물에 납품하는 것이었다.

1935년 9월에는 부동산 경영 및 금융, 농업 경영을 목적으로 대동흥업주식회사(大同興業)를 설립했다. 공칭자본 200만원을 들여 종로 2가 2번지 일대에 설립한 대동흥업주식회사는 태평양전쟁 중인 1940년 경제통제령에 따라 산업계가 마비되면서 1941년 9월 25일에 (주)화신에 흡수되었다.

1937년 6월에는 농사, 목축, 부동산 경영 및 금융업을 목적으로 하준석·조준호와 공동으로 출자해서 제주도 한라산 일대 420여만 평의 농장부지를 구입해서 자본금 50만원의 제주도흥산(濟州道興産)을 설립하였다. 제주도흥산은 1941년에 박흥식이 주식 100%를 인수하였다.

1939년 4월에는 종로2가 5번지에서 자본금 275만원의 화신무역(和信貿易)을 설립, 무역업에도 진출하였다. 1937년에 발발한 중일전쟁을 계기로 일본과 만주, 북중국 일대와의 교역이 급격히 확대되는 등 소위 천진무역(天津貿易)이 박흥식의 구미를 당겼던 것이다.

전쟁 중인 만주, 북중국 일대는 각종 생활필수품과 잡화류가 대량으로 소요되어 화신무역은 설립 이래 최대성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사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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