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토리

[이슈&스토리]당신의 論文(논문) 안녕하십니까… '표절 시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당신의 論文 안녕하십니까

2015년 '천재 소년' 송유근군 박사논문
'베끼기 판정' 지도교수 해임·징계 이슈
표절 개념·의식 변화 판명기술 발전에
학계·예술계 곳곳서 '논란' 끊이지않아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의혹으로 낙마
'사회적 문제' 대두 교육부 지침 마련해

文정부 인사청문회서도 역시나 '도마위'
"승인받아" "전체 봤을때 제 작품" 해명
김상곤 후보자 "당시 기준 따랐다" 답변
'관행' 표현 "학자로서 책임회피" 우려도
학문수준 저하 유발 '더 엄격히 감시' 지적
일각 "대부분 표절 학사논문 폐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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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천재 소년 송유근 군의 박사논문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송유근과 한국천문연구원(KASI) 박석재 연구위원이 공동저자로 참여해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Astrophysical Journal·2015년 10월 5일자)에 제출한 논문이 같은 해 11월 24일 게재 철회됐다.

저널이 밝힌 철회 이유는 지도교수이자 논문 제 2저자인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박사가 2002년 학회에서 발표한 발표자료(Proceeding)를 많은 부분 그대로 사용하고도 인용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즉, 표절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는 송유근군과 박석재 교수를 5개월이 지난 2016년 4월 징계 조치했다. 박 교수는 해임되고 송유근군은 2주간 근신하고 반성문을 제출해야 했다.

표절시비는 흔하고, 점점 흔해지고 있다. 표절의 개념과 의식의 변화, 표절을 판명하는 기술이 발전해서 그렇다. 학계뿐 아니라 예술계 곳곳에서 사시사철 표절시비가 일어난다.

그런 가운데 '송유근의 표절'은 다른 표절과는 조금 달라보였다. 그의 표절이 남다른 이유는 '천재'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천재의 핵심은 독창성 아닌가. 너무 독창적이어서 보통사람은 만들기는커녕 이해하기도 버거운 상대성이론 같은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천재일 텐데, 표절하는 천재라는 것은 어쩐지 말이 되지 않는 말 같았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천재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차르트를 비롯한 숱한 음악가들이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이든의 멜로디를 표절한 것을 지적받은 모차르트가 "그의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더 좋게 바꿀 수가 없었다"고 변명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은 베토벤이 자신의 할아버지의 작품을 베낀 것이라는 기사가 벨기에의 한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다. 베토벤의 경우 '표절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거장 음악가들에 얽힌 표절 논란 계보는 어지럽다. 그렇다면 이것을 '관행'이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두 달 가까이 인사청문회가 이어지고 있다. 논문표절 논란이 예외 없이 불거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6월 2일 노사정위원회 보고서와 산업노동연구 논문 내용이 같다는 자기 표절 의혹에 대해 "노사정위 승인을 받고 학회지 요청을 받아 게재된 것"이라고 답했다.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학위를 받은 1984년 박사학위 논문 가운데 35단어가 1976년 발표된 다른 논문과 일치하는데,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아 표절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강 후보자는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일부 따옴이라든가 각주가 어디서 왔다는 것에 대해 미진한 점은 실수였지만 전체로 봤을 때 제 작품"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석사 논문 표절 의혹을 묻는 자유한국당 박덕흠 의원의 질문에 "제 논문이 많이 부족하고 내세우기 어렵지만 표절했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박사학위 논문표절 의혹과 관련해 "당시 기준과 '관행'에 따라 모든 것을 표시했는데도 (표절이라고) 오해를 하셔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학자의 양심을 걸고서 표절이 아니다"라며 "추후 부정행위라고 판명이 날 경우에는 장관직 사퇴를 포함해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혔지만 '관행'이라는 표현은 경각심을 깨웠다.

교문위, 김상곤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
지난 3일 오후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성엽 위원장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장관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있다.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은 보고서 채택에 반대해 불참했다. /연합뉴스

최근 강원도 모처에서 열린 수학과 학회 교수들은 저녁 자리에 모여앉아 자연스럽게 표절을 화제에 올렸다. 30년간 교수로 연구활동을 해온 김모 교수는 "학자로서 '관행'이라고 해명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에 우려를 표했다.

김 교수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논문 표절의혹은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바로잡는 힘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예전의 관행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예전에는 객관적인, 외부의 검증이 안됐으니까 표절을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뿐, 표절한 사람은 모를 수 없다. 표절은 학자로서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절의 기준에 대해서는 "표절을 판정하는 기준이 지금 더 엄격해졌을 수는 있지만 기준이 없었던 적은 없다"며 "표절은 전체적인 학문의 수준 저하를 이끌어 더 엄격히 감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표절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논문 표절논란으로 낙마했다. 이후 교육부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 당시에는 표절을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결과 등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2015년에 '일반적 지식이 아닌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작물을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활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로 개정하고, '타인의 연구내용 전체 또는 일부를 출처표시 없이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 '타인의 저작물의 단어 및 문장 구조를 일부 변형하여 사용하면서 출처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 '타인의 독창적인 생각을 활용하면서 출처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 '타인의 저작물을 번역하여 활용하면서 출처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를 모두 표절에 포함시켰다.

김 교수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는 5년 전 박사 학위 취득 요건을 강화했다. SCI급 저널에 저자의 형태로 이름이 올라간 논문을 1편 이상 제출해야 한다. SCIE급 저널에서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바꾼 궁극적인 이유는 '학문의 발전'인데, 이 경우 표절 등 연구윤리를 벗어난 행위에 대한 감시도 높아진다.

김 교수와 같은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인 김모(36)씨는 졸업요건이 강화된 후 졸업자 수가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석·박사 동기 13명 중 박사 졸업자는 2명뿐"이라며 "이전에는 거의 전원이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지금은 정말 잘 연구한 사람만 졸업할 수 있고 대부분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논문표절을 없애기 위한 방안을 묻자 김씨는 '학사 논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사논문은 대부분 표절 아닌가. 그런데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대학생들은 논문 쓸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제대로 논문을 쓰겠나. 연구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학부를 졸업하면서 최초의 표절을 경험하고 학교는 이를 용인한다.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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