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한국 우익의 '적통'

고영직

발행일 2017-07-1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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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직 문학평론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국문학자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해온 한국 우익의 사상사적 기원을 인물 중심으로 탐사하고 있는 책이다. 친일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고 공산주의 이념과도 친연성이 없었던 '양심적' 우익의 실체를 추적하며, 산업화/민주화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우익 사상사의 흐름을 서술하고자 한 기획이다. 최근 국문학 연구에서의 신(新)역사주의적 문학연구의 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당면 과제는 근대적 민족국가 건설과 근대화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나라 만들기와 전후 복구를 주도하는 이승만, 장면 같은 기성세대의 경우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로서 이른바 '학병(學兵) 세대'가 두각을 드러내는 데에는 이러한 시대상황이 놓여 있었다. 1920년을 전후해 1917년생부터 1923년생까지를 아우르는 일제 말 학병 세대는 선배 세대의 친일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고, 일본 유학파라는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세대의식을 형성한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1944년 당시 고등교육을 받는 조선인 학생 숫자가 약 7천200명 정도라고 저자는 추산한다. 그렇다면 김건우가 생각하는 한국 우익의 기원은 무엇인가. 저자는 세 그룹을 주목한다. 월남 지식인, 서북(평안도) 출신의 기독교인들, 1960년대 이후 등장한 민족주의자 그룹이다.

저자는 세 그룹 가운데 광복군의 '적통(嫡統)'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장준하·김준엽이 창간한 잡지 '사상'-'사상계' 그룹이 그 기원이라고 파악한다. 이들은 우익 반공 국가주의의 선봉에 서서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구상을 '사상계' 지면을 통해 펼쳐낸다. 이들이 말하는 근대화는 실상 미국화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양호민·유경환·선우휘 등 '사상계' 편집위원들이 '조선일보'로 흡수되는 과정은 '서북 출신'이라는 지역주의를 빼놓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예컨대 '사상계'가 주관한 동인문학상 수상자인 선우휘가 '조선일보'에 입사하고, 훗날 동인문학상을 '조선일보'가 주관하게 되는 과정도 '서북'이라는 지역주의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월남한 서북 출신의 기독교 보수파가 오늘의 대한민국 우익을 형성했다는 저자의 진단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주장이다. 저자가 말하는 보수우익이라는 기표와 우리가 익히 아는 보수우익이라는 기의와는 판이한 점이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 우익의 기원은 지금의 자유한국당과 태극기집회 세력보다는 더불어민주당 측이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극우-반공이라는 일방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국 우익의 사상사적 기원과 형성을 탐색한 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물론 책에서 말하는 '설계자'들이라는 이념틀이 지금·여기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엇이 진짜 보수(保守)이고, 무엇이 진짜 우익(右翼)인지 말한다는 점에서 논의할 지점들이 적지 않다. 보수라는 말은 '보전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와 우익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데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보수의 몰락은 진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자신의 문화적 이념을 보존하려는 제대로 된 양심적 보수의 부활이 필요하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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