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15]빈볼

타자에 위협 가하는 '계산된 투구'

경인일보

발행일 2017-07-11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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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투수' 이미지로 마운드 군림
'의도적' 판단되면 즉각 퇴장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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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빈(Bean), 즉 '콩'은 미국에서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은어로 쓰인다. 그리고 빈볼(Bean Ball)이란 투수가 타자의 머리를 향해 의도적으로 던지는 공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꼭 머리가 아니더라도 고의적으로 타자의 몸을 맞히기 위해 던지는 공을 두루 가리키기도 한다.

'악동'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1980년대 NBA 피닉스 선즈의 간판스타 찰스 바클리는 거친 몸싸움을 즐기는 플레이스타일 만큼이나 사생활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술집에서 벌인 난동으로 경찰서를 오가며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노출된 것만 해도 꽤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가 선수생활을 마친 뒤 고백한 바에 따르면 그 대부분의 난동들은 '성질을 죽이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다소 의도적으로 '성질을 쥐어 짜내가며' 벌인 일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거친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농구장에서의 플레이를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으로써 몸을 막아내야만 하는 농구경기의 수비수가 자신의 앞으로 달려드는 상대 선수의 험한 인상과 뒷소문을 떠올리며 움찔하는 한순간, 공격수는 쉽사리 한두 걸음을 더 내달리며 골대 가까이 돌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투수 로저 클레멘스나 1950년대의 명투수 샐 매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저 클레멘스는 자기 팀 선수들과의 청백전 연습 경기 중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공을 때려 홈런을 날린 타자에게는 종종 빈볼을 던져 화풀이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샐 매글리는 '내 할머니라고 해도 타석에 바짝 붙어 선다면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지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이 세상의 어떤 타자라도 자신의 공에 함부로 손을 댄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독한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그들의 공을 상대하며 '어떻게 때려낼 것인가' 하는 고민에 더해 '때려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까지 하느라 주춤대는 순간 이미 그들의 강속구는 포수의 미트에 박히곤 했던 것이다.

야구는 몸과 몸이 부대끼는 것을 넘어 공과 몽둥이라는 '연장'까지 개입하는 살벌한 투쟁의 현장이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몸으로 마주하는 대결을 지배하는 만고불변의 승부처는 역시 '악'이며 '깡'이다.

그래서 빈볼은 온갖 스포츠정신이니 매너니 하는 허울로 덧칠을 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탈색시켜버릴 수 없는 '악과 깡의 맞짱'이라는 본질을 가장 생생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순간이다.

투수들 중 아주 예외적으로 '깡'이 센 몇몇 투수들만이 상대 타자의 머리를 향해 작정하고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으로 '악'이 있는 몇몇 타자들만이 공이 귓가를 스쳐간 뒤에도 조금도 물러서거나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그다음 공을 노리며 더욱 집중해서 기어이 안타를 때리고 펄쩍펄쩍 뛰며 투수를 비웃을 줄 안다.

그런 위대한 타자들의 대표격인 테드 윌리엄스는 그래서 감독이 된 뒤 자기 팀 투수들에게 이렇게 충고를 하기도 했다.

"혹시 타이 콥이나 조 디마지오 같은 수준의 타자들을 만난다면 절대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지지 마라. 그래봐야 공 한 개만 손해를 볼 뿐이고 괜히 타자의 승부욕에 불을 질러 더 공에 집중하게끔 만들 뿐이니까 말이다."

빈볼은 아주 흉악한 짓이다. 그래서 의도적인 것으로 판단될 경우 즉시 주심에 의해 퇴장 명령이 내려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출장정지나 벌금 같은 처분이 내려지게 된다. 물론 처분과 무관하게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사악한 짓이다.

하지만 어떤 제재수단을 마련하고 어떤 신사협정이 맺어진다 하더라도 아마 야구장에서 빈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야구, 아니 스포츠를 발생시키고 이어져 내려오게 만드는 어떤 본능에 뿌리를 박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김은식 야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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