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선경과 SK

이진호

발행일 2017-07-17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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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일부 계열사들 인천서 보여준 행동보며
신뢰 없고 오직 이윤과 기업편의주의 인상만
故최종현 전회장 유지 퇴색되는것 같아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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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시골의 한 초등학교 정문 앞. 등교 시간 지각생을 지도하던 고학년 남자 학생이 지각한 남동생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머리를 뒤로 젖힌다. 이 남학생은 자신을 믿고 몰래 빠져나가려는 동생을 붙잡아 지각생 명단에 이름을 적는다. 동생이 지각한 벌로 교실 청소하고 있을 때 형이 찾아온다. 화가 난 동생은 물걸레를 던지며 형에게 투정을 부린다. 형은 미안한 마음에 동생과 함께 청소를 마친 뒤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해가 지는 마을 길을 돌아 집으로 향한다' 바로 이 장면에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공과 사를 구분해야 사회가 명랑해지고 밝아집니다"라는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1993년 10월 10일 오전 7시 20분 'MBC 장학퀴즈' 시작 전 방영된 전 선경(鮮京)그룹 이미지 광고다. 선경그룹과 장학퀴즈와의 인연은 44년 전인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부터 프로그램을 후원했고, 이듬해인 7월 故 최종현 전 회장이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고려해 "사람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는 인재경영 철학을 내세우며 기업의 공익성을 강조한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만 해도 기업의 공익성을 홍보하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을 때였다. 그룹 내 임원들조차 제품 광고가 아닌 기업 이미지 광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최 전 회장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고 한다.

1970년대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개발'과 '성장'을 통한 경제발전이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불법'과 '부정'이 묵인되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갑질'을 따질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대기업 납품 업체들은 온갖 수모와 갑질에 시달려도 시키는 대로 하고, 달라는 대로 주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경그룹의 공익성 광고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인간을 중히 여겨야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해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미래를 위해 패기 있게 나아가자"는 캠페인 광고는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소비자의 신뢰를 강조한 선경그룹이 SK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뒤로 故 최 전 회장의 유지가 퇴색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SK그룹 일부 계열사들이 인천 지역에서 보여 준 행동을 보면 40년간 공익광고를 통해 강조해온 '신뢰'는 없고 오직 '이윤'과 '기업 편의주의'만 쫓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SK건설은 남구 학익동에 4천여 세대에 이르는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주변에 녹지공원을 조성하고 수백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대부분이 고사하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다 주민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SK건설은 "아파트 입주가 끝났고. 공원을 남구에 기부채납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관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버티다 인근의 또 다른 녹지공원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자 뒤늦게서야 공사를 위탁한 SK임업에 원인 조사와 조경계획을 다시 세우라고 했다. 작업은 덥다는 이유로 10월께나 진행될 모양이다. SK에너지도 막무가내 공사로 빈축을 사고 있다. 중구 연안부두 라이프 아파트 인근에 대형 유류 저장고 25기를 운영하는 SK에너지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송유관 매설 공사를 벌였다. 중구청이 착공 전 주민과 협의하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SK에너지 측은 "주민단체와 논의를 했지만 반대가 심해 공사를 더 이상 연기할 수 없어 진행하게 됐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소비자(국민) 신뢰를 강조하고 기업의 사회공헌을 중요시한 선경그룹 고(故) 최종현 전 회장의 뜻은 지금도 존경한다. 하지만 그러한 좋은 이미지가 주민 불편이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덮기 위한 '포장용'으로 전락했다면 마땅히 고쳐잡아야 한다. SK그룹은 한번 쯤은 계열사들이 최종현 전 회장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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