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로 닦은 땅이 되어서
집 없는 사람의 집터가 될 수 있다면
내가 빗방울이 되어서
목 타는 밭의 살을 적시는 여울물로 흐를 수 있다면
내가 바지랑대가 되어서
지친 잠자리의 날개를 쉬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음악이 되어서
슬픈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 될 수 있다면
아, 내가 뉘 집 창고에 과일로 쌓여서
향기로운 향기로운 술이 될 수 있다면
이기철(1943~) |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웃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것은 적합한 일이지만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땅 없는 사람들에게 '땅이 되어서' '집터가' 된다는 것. 메마른 땅에 '빗방울이' 되어서 '목 타는 밭'의 '여울물'이 된다는 것. '지친 잠자리'를 잠시 쉬게 하기 위해 '바지랑대가' 된다는 것. '음악이 되어서' '슬픈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 된다는 것. 무엇보다 된다는 것은 조용히 자아를 드러내지 않고 타자와 세계를 위해 발효시키는 과실주와 같이 '향기로운 술'로 향기롭게 익어간다는 것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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