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22]화신그룹(완)-10日강점기 재벌형성

反日감정·日세력 활용 '외줄타기' 성공

경인일보

발행일 2017-08-08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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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 전후
박흥식이 인수하기 전 화신상회의 초기 모습(위)과 화재 후 현대식 대형 건물로 완공된 화신백화점 모습(아래). 화신 그룹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다. /'화신 50년사' 수록

한국인 고객층 기반 자리매김
총독부와 협조관계 형성 주력
만주·북중국 진출 그룹 발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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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화신그룹은 경방삼양그룹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재벌을 완성한 기업집단이었다.

경방삼양그룹의 김성수·김연수 형제가 선대에 축적된 농업자본을 근대적인 산업자본으로 전환해서 제조업 중심의 복합기업집단을 형성한 대표적인 '지주출신형 산업자본가'였다면, 화신그룹의 박흥식은 유통업에 특화해서 자수성가한 '서민출신형 상업자본가'였다.

이들은 일제 치하라는 특수한 기업환경 속에서 각자 서로 다른 분야에서 기업집단을 형성한 대표적인 토착 기업가들로 꼽힌다.

이들이 일제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경영 감각 내지는 선진 경영기법 및 기술의 적극 도입 등 나름대로 발군의 기업가정신을 발휘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이들의 주요 고객이 한국인이었다는 점이다.

경성방직이나 중앙상공 등은 후발업체로서 기존에 일본자본 등이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남한지역 대신 북한지방 공략에 주력하였다. 1920년대 경성방직은 생산을 개시했으나 제품의 질이 떨어져 경영난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때마침 전국적으로 전개된 '물산장려운동'에 힘입어 도산위기를 넘기고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화신그룹의 근거지도 일본 자본의 침투에 적극적으로 대항했던 종로상권으로, 백화점의 주요 고객은 한국인 소비자들이었다는 점에서 같은 성공의 맥락을 갖고 있다. 일제하에서 민족의식에 고취된 사회분위기가 토착기업들의 성장의 활력소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경방삼양과 화신은 1937년 중일전쟁과 함께 만주 및 북중국 지역에 진출하면서 그룹으로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 경성방직은 중일전쟁이후 만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생산규모 확대 및 일관 생산 체제를 완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삼양사 또한 중국에 다수의 농장경영을 확대해서 태평양전쟁 무렵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하였다. 화신그룹도 중일전쟁 이후 '만주 특수'에 편승하여 무역업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화신그룹 또한 최대의 상업자본으로 성장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외연적 확대가 경방삼양과 화신의 대기업 집단화에 크게 공헌한 셈이다.

세번째 성공 원인은 일제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하에서 민족계 기업들은 일본계 기업들에 비하여 대체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일제의 식민정책 내지는 자본력, 기술력, 경영능력 등의 열세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제는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에 필요한 협조자를 포섭하는 차원에서 조선인 지주 및 기업가 등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토착기업인들은 이와 같은 여건을 활용하기 위해 총독부와의 연결고리 형성에 주력하였고, 이를 통해 식민지적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연수는 일제하에서 중추원 참의, 경성주재 만주국총영사, 총동원연맹 이사 등을 지냈다. 박흥식도 총동원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등을 각각 역임한 것이 상징적인 사례였다.

또한 박흥식과 김연수는 함께 1944년 10월에 설립된 조선비행기공업의 초대 이사진에 참여하기도 했다.(이한구 '일제하 한국기업설립운동사', 청사, 1989, 214~225면) 결국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동화된 예속 기업가들이었던 것이다.

삼양과 화신그룹은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본의 정치집단과 한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이용, 외줄타기식의 사업을 전개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일제하라는 특수한 조건과 환경을 기업경영에 적절히 활용했던 것이다. 경방삼양그룹과 화신그룹은 국내 재벌의 효시였을 뿐만 아니라 향후 국내 재벌 형성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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