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수원화성 '공심돈(空心墩)'

적의 공격 막기위해 벽돌로 만든 성곽시설

경인일보

발행일 2017-08-15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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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공심돈
밖에서 본 서북공심돈. /동원고 제공

'중국의 것' 장점 확인하고 받아들여
바깥 동정 살피면서 화살·총탄 발사
독창적 형태·조형미, 주변과도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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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이것은 화성을 연구하고 잘 복원해 보존 관리한 많은 학자, 행정관리, 문화재 전문가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화성의 역사적인 가치와 미적인 아름다움이 세계 최고이기도 하고요. 화성에는 모두 48개의 다양한 성곽시설이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수원화성에만 있는 독특한 시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공심돈(空心墩)'입니다.

공심돈은 '가운데가 비어있는 높게 지은 성곽시설'이라는 뜻으로,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에 좋고 강력한 화기를 설치해 적을 공격하기에 알맞은 지점에 만들었습니다.

화성에는 3개의 공심돈이 있는데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바로 옆에 만들어 비교적 적의 공격에 약한 부분인 화서문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만들고, 동북공심돈은 밖의 높은 자연지형(지금의 동공원)으로 인해 취약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어요.

남공심돈 역시 남수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중에 적이 잘 보이는 곳에 만들었는데 남수문의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만든 듯합니다.

지난해 화성축성 22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회 때, 1907년의 독일인 헤르만 산더(1868~1945)가 찍은 사진을 통해 설계도만 확인되던 남공심돈을 비롯한 7개 시설물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심돈은 중국의 성곽시설인데 우리가 처음으로 그 장점을 확인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병서인 『성서(城書)』에는 공심돈을 "벽돌로 3면에 섬돌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다. 가운데를 2층으로 구분해 널빤지로 누(樓)를 만들고 나무사다리를 이용해 위아래에 공안을 많이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랑기나 백자총 등을 발사해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가운데가 비도록 시설을 만들려면 '벽돌'이라는 재료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마침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처음으로 벽돌을 규격화해서 곳곳에 사용했기에 공심돈이라는 방어력이 탁월한 시설을 만들 수 있게 됐지요.

실제 컴퓨터로 공심돈에 설치된 무기인 불랑기(서양식 청동제 화포)나 백자총(화약으로 탄환을 쏘던 총)을 발사하는 모의실험을 해보니 방어력이 대단했어요. 적의 공격은 숨어서 피할 수 있고, 공심돈 내부에 숨긴 화기를 발사해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니 적이 두려워할 만했어요.

공심돈 모양은 독특하기도 하지만 주위 풍경에도 잘 어울린답니다. 서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년) 3월 10일에 완공했다고 하는데, 축조 당시의 완전한 모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형태와 조형미로 인해 바로 옆에 있는 화서문과 잘 어울립니다.

석재와 전돌, 목조를 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치성의 석재 쌓기 기법과 상부의 공심돈의 전돌 축조기법, 현안과 총안, 전안 등의 중요한 시설 등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조형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2011년 3월 3일, 서북공심돈만 따로 보물 제1710호로 지정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조는 1797년 1월 29일 화성을 순행했는데, 화서문(華西門)을 지나 서북공심돈에 이르러 신하들에게 "공심돈은 우리나라의 성제(城制)에서는 처음 있는 것이다. 여러 신하들은 마음껏 구경하라"고 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습니다.

또 다른 공심돈인 동북공심돈은 군사적 요충지에 만들었고 형태가 독특해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돼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립니다. 최상층에 올라서면 화성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동북공심돈은 중국 요동에 있는 계성의 평돈(平墩)을 모범으로 해 내외의 두 겹으로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하는데, 평돈이 있는 계성은 중국을 오가는 우리나라 사신들이 다니는 길목이므로 그 모습이 사신들을 통해서 국내에 알려진 것이라 짐작됩니다.

미복원된 시설인 남공심돈은 남암문에서 팔달문 쪽으로 성곽이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에 있으며,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건축구조가 서북공심돈과 비슷합니다. 언젠가는 나머지 미복원 시설과 함께 완벽하게 복원된 남공심돈을 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김찬수 동원고 교사

※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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