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북한 동해안으로

일제시대 금강산은 민족의 성소
이광수가 '금강산 유기'를 썼고
원산엔 최인훈·이호철 작가가
문학인들의 일이 많았던 함흥
한반도 등뼈 훑어 오르듯
동해안 북한 문학기행 떠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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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두어 달 전에 "서울문학기행"이라는 책을 펴내 놓고 이번에는 "남해안 문학 기행"을 해볼까 했다. 그것도 좋지만 뭔가 더 새로운 얘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하고 생각을 돌리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북한 쪽 동해안이다.

지금은 가지 못하는 땅, 그나마 금강산이라도 왕래는 했었는데, 지난 두 정부 동안 관광 갔던 국민 한 사람이 죽고 남북대화가 단절되면서 그것조차 끊어졌다. 세월이 바뀌었으니, 지금은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다시 오갈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7번 국도 타고 한반도 등뼈를 훑어 오르듯 금강산 위로 원산, 함흥도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북한 동해안 문학기행, 이라고 해도 지금은 갈 수 없으니 현재를 쓸 수는 없고, 과거, 함경선 타고 저 두만강 어귀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었던 때로 한번 가보자.



일제시대 때 금강산은 민족의 성소였다. 이광수가 '금강산유기'를 썼고 "개벽"지 발행인 박달성도 기행을 남겼지만, 뭐니 뭐니 해도 김동인이 "창조"지에 발표한 '약한 자의 슬픔'(1920)의 주인공이나 이광수 장편소설 "재생"의 여주인공이 금강산에 오르는 대목은 인상 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산에는 누구보다도 최인훈과 이호철 같은 작가들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모두 원산고등학교 다니다 말고 6·25 전쟁을 맞아 우여곡절 끝에 미군 수송선 타고 부산으로 내려와 남한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6·25중 미군 원산 폭격의 '문학적' 의미는 심각한 숙고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광수, 메논 등과 밀접한 관계에 놓인 모윤숙도 원산 태생이다.

함흥에 가면 문학인들의 일들이 더욱 많다. 일제 말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함흥영생 여고보 학생의 일기장 내용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많은 한글학자들이 체포되어 곤욕을 치렀고 이윤재, 한징 두 분은 함흥형무소에서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 시인 백석이 함흥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있으면서 '함주시초' 연작을 썼다. 수필 '동해'도 필시 이쪽에 머물 때 썼으리라. 지도를 보면 '북관'의 관문이라는 함주는 함흥을 에워싼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 태생으로 이곳에 와 머물렀지만 고향이 함흥 쪽인 문학인들이 많다. 순서 없이 한설야, 박연희, 안수길, 김은국, 강용흘, 이북명, 김송, 박순녀 같은 이름을 명기해 본다.

낙원, 홍원, 신포를 따라 거슬러 올라 북청에 이르면 작가 전광용의 고향이요, 해방 공간 때 활동한 시인 이찬도 이곳 태생이다. 김동환의 시 '북청 물장수'를 생각하게 한다. 또 "해방전후"를 쓴 여성작가 임옥인의 길주를 옆에 두고 명천으로 해서 단천에 이르면 작가 최정희, 시인 설정식 등이 이곳 태생 사람들이다. 필자는 특히 최정희의 삶과 작품에 관심이 있고 논문도 써본 적이 있다. 아직도 공부해서 쓸 게 많은 작가다. 어떤 곳에서는 성진 태생이라고도 써 있으니, 오늘 한번 최정희의 수필을 직접 찾아보아야겠다.

오늘날 김책시라 명명된 곳은 과거에는 함경북도 성진이었고, 아주 의미 깊은 시인이자 비평가 김기림이 이곳에서 났고 신경향파 작가 최서해, 또 다른 비평가 박치우 등도 여기 사람이다. 김기림에 관해서 최근에 필자는 그와 박인환의 사상적 교호 관계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지만, 그보다 그가 일제 말기에 고향 근방으로 물러나 붓을 꺾고 경성고보 영어 교사로 버틴 일을 너무나 귀하게 여긴다. 경성 출신 시인 김규동이 그에게 배웠다.

명천, 어랑 지나 경성에 이르면 작가 이효석의 아내 이경원이 여기서 났고 그런 연유로 이효석이 경성농업학교에 머무르며 자신의 문학세계를 바꾸어 나갔다. 경성은 또 김동환 시인과 손소희 작가가 난 곳이기도 하며, 근처에 유명한 '주을온천'이 있기도 하다. 이 주을온천은 주을에 온천이 있기도 하지만 본래 여진말인 '주을온'에 '천'자가 붙어 이 말이 된 것이라 한다. 수필 등에 자주 나오는 곳이다.

이제 어랑 거쳐 청진에 이르면 영화 "아리랑"의 나운규가 이곳 청진형무소에 있었고, 평론가 이봉래, 동화작가 김요섭, 영화감독 신상옥 등이 여기서 났으며, 부령 태생 작가 장용학이 해방 직후 월남전에 청진여자중학에서 교사로 있기도 했다. 탈북작가 이지명 씨, 김정애 씨도 여기서 살다 남쪽으로 왔는데, 칠보산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나진, 웅기, 한반도의 북단에 가까워진다. 유명한 작사가 양인자가 나진, 근대문학 연구가 주종연 선생이 웅기 태생이다.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동해안으로 떠나는 자동차 행렬이 길고 길었다. 이제 좀 북녘땅 동해안을 따라 거슬러 오르고 올랐으면 싶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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