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우리에게 휴가란

이진호

발행일 2017-08-17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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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해외·국내로 여행가야 하는 고정관념
쉬지 못하고 틀에 박힌 일정 '또다른 스트레스'
쌓인 여독 풀기위해 엄마·아빠는 휴식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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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직장·학교·군대 등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을 휴가(休暇)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휴가라고 하면 해외든 국내든 어딘가 여행을 가야만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다. 평상시 일에 쫓겨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부족한 부모(상당수는 아빠들이겠지만)들에게 휴가는 일 년 중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휴가의 절정기가 7월 말부터 8월 둘째 주에 몰리는 것은 날씨가 좋은 때이기도 하지만 방학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 휴가만 손꼽아 기다리다 보니 어디로든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다. 휴가 때 해외로 떠나려면 연초부터 여행지를 검색하고 항공권과 숙박시설을 예약해야 하는데 이것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한다. 국내 여행도 최소 2~3달 전에는 미리 숙박시설을 찾아야 예약할 수 있다 보니 휴가 전부터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올여름에도 많은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7월 말과 8월 둘째 주 사이에 휴가를 보냈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이후 연일 이용객이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로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급격히 늘었다. 해외여행의 대부분은 여행사가 구성한 '패키지여행'이다. 여행사의 일정대로 새벽부터 차량을 타고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곳을 둘러보고 나면 면세점이나 관광상품 판매점을 의무적으로 들러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나마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교육적이고 경험을 쌓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여행방식이다.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해외여행에서 남는 것은 "나, 해외 갔다 왔다"뿐이다. 정신없이 휩쓸려 다니다 보면 보고 느낀 것도 없이 며칠간의 일정은 허무하게 지나간다. 해외여행의 추억이라는 게 인증용으로 SNS에 올릴 휴대전화기로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돌아오는 가방 안에는 관광지 이미지가 새겨진 열쇠고리 꾸러미나 양주, 면세 담배가 대부분이다. 좀 더 쓰면 현지 면세점에서 구매한 고가의 향수, 가방이나 지갑, 시계 정도다.

국내 휴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계곡과 해수욕장에는 어느 곳이라 할 것 없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어렵게 휴가지에 도착하면 아빠들은 마치 '의례(儀禮)'를 치르듯 정성스럽게 숯불을 피운다. 휴가의 최고 이벤트인 고기를 굽기 위해서다. 휴가 둘째 날 아이들이 계곡이나 바다에 잠시 몸을 담갔다가 돌아오면 아빠들은 또다시 고기를 굽기 위해 숯불을 피운다. 중간에 닭도 삶아 먹고 부침개도 하고 소시지나 감자, 고구마도 구워 먹지만 휴가지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노트북이나 휴대용 스크린으로 영화도 한두 편 보면서 즐겁게 지내기도 한다지만 셋째 날도, 넷째 날도 아빠들은 어김없이 숯불을 피운다. 올여름 휴가도 예년과 다르지 않게 열심히 숯불에 이것저것 구워 먹고, 마신 기억뿐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힘들어도 즐겁다. 문제는 도착해서 어떻게 보내느냐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충전이나 휴식을 즐기지 못하고 틀에 박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또 다른 '여행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휴가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겠는가. 여독(旅毒)을 풀어야 일상으로 돌아가도 힘들지 않다. 그래서 올여름 가족과 함께 힘든 휴가를 다녀온 아빠, 엄마들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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