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만리장성이 외부의 적에 의해 뚫린 적이 있는가?

진종구

발행일 2017-08-18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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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구-서정대 교수'
진종구 서정대학교 아동청소년보육과 교수
중국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왕조와 문명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외부의 위협으로 성문이 열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로지 내부에서 일어난 자중지란으로 적에게 스스로 내다 바친 역사가 반복했을 뿐이다.

송(宋)과 명(明)은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외부세력으로부터 왕조의 계속성을 지키려 했으나 적의 심리전과 내부 분열로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싸울 의지와 싸울 힘을 기르지 못한 채 대화와 외교에만 매달린 결과였다. 싸울 의지가 없으니 싸울 힘을 기르지 못했고, 힘이 없으니 상대의 눈치 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송(宋)의 충신 악비(岳飛)는 금(金)의 군대를 연파하고 북방의 성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당시 송에는 주화파와 주전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주화파의 진회(秦檜)는 '악비가 있는 한 결코 화의가 이뤄질 수 없다'는 금(金)의 올출이 모의한 계략에 호응한다. 진회는 악비에게 모반죄를 뒤집어씌워 가두고 모진 고문을 한다. 하지만 죄를 자백받지 못하자 '모반증거가 없지도 않은 것 같다(莫須有)'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내세워 결국 처형해 버린다. 충신을 죽이면서까지 평화를 구걸한 결과는 어떠했나? 철통 같던 만리장성의 성문을 신흥 발호세력인 몽골족에게 스스로 열어주고 말았다. 또한 송(宋)은 퍼주기식 구걸외교로 망한 대표적 나라기도 하다. 거란족의 요(遼)에 매년 은 10만 냥과 비단 20만 필을, 위구르의 서하(西夏)에 매년 막대한 재물을, 여진족의 금(金)에는 매년 은 25만 냥과 비단 25만 필을 바쳤다. 퍼주기 외교와 구걸로는 평화가 결코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송(宋)의 역사가 증명한 셈이다.

송의 교훈을 잊은 명(明)도 망국을 자초한 나라로 중국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송에 악비가 있다면 명에는 원숭환(袁崇煥)이 있었다. 명의 충신 원숭환도 내부의 국론 분열에 희생됐다. 원숭환은 영원성 전투에서 청(淸) 태조 누르하치를 패퇴시킨다. 그 뒤 홍타이지가 청 태종으로 등극하는데 홍타이지는 원숭환이 국경을 지키는 한 결코 명(明)을 정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모략을 지시한다. 청과 내통하던 명나라의 이신(貳臣)들은 간계를 꾸몄다. 이신이란 두 조정을 섬긴 신하라는 뜻으로 오늘날 이중간첩쯤에 해당한다. 간계에 넘어간 명(明)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는 원숭환을 반역죄로 몰아 책형(죄인을 기둥에 묶어 창으로 처형하는 형벌)에 처했다. 이때 백성들은 사지의 살점이 발라지고 두개골이 부수어지는 원숭환을 바라보며 환호했다.

포퓰리즘(populism)이 이러한 것이다. 어쨌든 적국의 심리전으로 인해 원숭환이 처형되자 자신을 지켜줄 장군이 없어진 황제 숭정제는 이자성의 반란군에 쫓겨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철옹성 만리장성은 청군(淸軍)에 이처럼 허무하게 열리고 만다.

최근 북한은 핵탄두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운운하며 다양한 안보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화는 무력으로 오지 않는다'는 우리만의 해석으로 대화와 외교적 해결에만 집착하는 모양새다. '정말 전쟁이 나겠느냐'는 식의 지나친 안일함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싸울 힘은 차치하고 싸울 의지마저도 꺾여버린 것 같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했다. 2천 년 전 로마 사람도 알았던 사실을 왜 우리는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진종구 서정대학교 아동청소년보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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