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지금

권성훈

발행일 2017-08-2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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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고요가 있고

여름 해가 있고

흘러간 존재의 모습이 있다

네가 떠난 다음

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것

이승훈(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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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세계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시끄러운 것들은 사실상 공허한 잡음이며, 역설적으로 '커다란 고요'에 불과할 뿐이다. 내 안에 없는 것들, 여기 속하지 않은 것들은 세상엔 있지만 내게 없는 것이며, 때로는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써 그 자체로 가치를 말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유의미를 가동하지 못한다. 시조시인 조오현 스님은 이것을 본질적인 것에 비유하면서 "삶이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설법한 적이 있다. 반대로 '지금 여기' 없는 것들은, 삶의 경계 밖에 있으므로 지금 내게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지금 여기' 있는 것은 그대로 있어 왔던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삶이란 뜨거운 '여름 해'에 그을리면서 흘러온, 혹은 '흘러간 존재의 모습이' 이른바 지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겠지만 '떠난 다음' 무엇이 남겠는가. 결국 '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것'은 당신이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시밭길과도 같은 '바로 지금' 이 아니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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