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5]만주(滿洲), 대중소설이 되다

경인일보

발행일 2017-09-13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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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위만주국(僞滿洲國)과 선통제 아이신기로 푸이(1906~1967)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베르톨루치(1940~)의 영화 '마지막 황제'(1987) 때문이었다. 마지막 황제 푸이는 그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이었다. 우선 만3세의 나이로 등극했다 강제로 퇴위된다.

망명객의 신분에서 유사-국가 만주국의 황제에 등극하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다시 전범으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 식물원 정원사로 생을 마감하는 반전과 몰락의 드라마를 쓴다. 그런 마지막 황제 푸이를 그린 한국소설이 있다. 바로 조흔파(1918~1980)의 '만주국'(1969)이다.

조흔파는 평양시 염전리에서 태어나 광성중학교를 거쳐 1943년 센슈대학 신학과를 졸업했다. 경성방송국 아나운서 등 방송계에서 활동하면서 집필한 방송소설 '대한백년사'와 학교소설 '얄개전'(1954)으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만주국'은 실록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월간중앙'에 1969년 8월부터 1970년 11월까지 16회에 걸쳐 연재됐다. '만주국'은 1957년 푸이가 '무순전범관리소'에서 자신의 죄상을 고백하는 '내 죄악의 전반생'을 토대로 소설화된 것이다.

푸이의 반성문은 1964년 '나의 전반생(我的前半生)'이란 이름의 자서전으로 북경과 홍콩에서 출판된다. '만주국'은 '나의 전반생'에 항간의 일화와 비화들을 덧붙이고 재구성한 '소설', 곧 정치소설이자 실록소설이며 대중소설이었다.

그래서인지 푸이가 승용차 트렁크로 기어들어가 탈출하는 장면, 일본군 사병에게 모욕당하는 얘기, 마적들에 대한 비화, 일왕(日王)의 항복 선언 직후 오스카 와일드의 시를 인용하며 자살한 수상 고노에 후미마로, 구두닦이가 된 전 육군 소장 구와오리 기츠시로 등 대중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가십거리용 비하인드 스토리들로 가득하다.

만주는 우리에게도 뜨거운 관심의 공간이다. 만주는 한국고대사의 현장이자 강역이었다. 또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 정책과 만주국의 정책이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

병영국가 만주국과 유신시대의 제4공화국, 관동군의 만주경제개발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아마가스 마사히코가 만든 만주의 국책영화들과 반공영화들, 위생검사와 국가기념일 제정 등 만주군관학교 및 만주 건국대학 출신자들이 주도한 주요 정책들이 그러하다.

'만주국'을 비롯한 염상섭·이태준·안수길·허준·김만선 등의 '만주문학'들도 그렇고 임권택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와 신상옥의 '무숙자'(1968)를 비롯하여 정창화·김묵·최경섭 등의 만주 소재 대중적 영화들은 만주가 우리의 역사적·문화적 테마임을 일깨워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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