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황현산

발행일 2017-08-25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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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변두리에선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
되레 중심부에선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 본다
무지 앞에 있고 둘러싸임 아는게 배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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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총서들이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프랑스 대학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크세주' 문고를 아마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가로 11.5cm 세로 17.5cm의 문고본 판형 128쪽에 학식과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백과사전적 지식을 항목별로 담고 있는 이 총서는 현재 3천 표제를 훨씬 웃도는 책이 40여 개의 언어로 옮겨졌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한국어로도 발간되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지닌 독서 대중을 위해 각 학문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을 담당한 이 '백과문고'는 우리 시대의 학술을 대표할 만한 기본지식의 저장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뜻의 '크세주'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서양에서 에세이란 장르를 창시한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가져온 말이다. 몽테뉴는 이 말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의심하는 상태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담았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방법적 회의주의라고 부르는데,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지식을, 특히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의심해 본다는 뜻이다. 한 개인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앎의 끝일 수 없다. 그 지식은 그의 지적 조건과 근면성과 주어진 자료에 따른 현재 상태의 지식일 뿐이니 모든 지식에 관한 담론은 그 탐구과정의 중간보고라고 말해야 옳다.

"철학이라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의술인 것이 다른 의술은 치료된 다음에만 즐겁지만 철학은 즐거움과 치료를 동시에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말도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은 모든 교육이 가벼운 축제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원용되기도 하지만, 모든 지식은 교리와 독단의 형식으로 전해질 것이 아니라 유동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뜻을 그 배후에 숨기고 있다. 의심하는 상태에서 그 의심을 깨치면서 앎을 넓히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즐거운 일도 드물다. 몽테뉴가 남긴 수많은 말 가운데 내가 이 두 문장을 같은 순간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지식 탐구에 대한 그의 회의주의에 내가 동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식에 대한 몽테뉴의 태도를 내 생활에서 다시금 긍정하게 되는 경험은 의술과, 아니 정확히 더 말해서 의사 선생들과 연결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생이던 때 어떤 의사가 쓴 칼럼 하나를 읽었다. 그는 유학 시절에 사귄 미국인 의사가 한국을 방문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 인삼을 선물로 주었다. 그 미국인 의사는 제 나라에 돌아가 인삼을 분석했더니 치료나 건강유지에 특별히 유효한 성분이 없다는 편지를 한국인 친구, 다시 말해서 그 칼럼의 필자에게 보내왔다. 한국인 의사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인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미신일 뿐이라고 칼럼에 적고 있었다. 홍역을 앓는 중에 피란을 가서 생사의 길을 헤매던 나는 인삼탕으로 건강을 회복한 경험이 있기에 그 의사의 칼럼을 신용하기 어려웠다. 그의 미국인 친구가 별 성의도 없이 인삼을 분석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뒤로 인삼의 효능은 여러 실험과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여러 경험 중에 한 가지 예만 더 들자. 황희 정승이 말년에 한 쪽 눈을 감고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하인에게 "눈을 번갈아서 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 안과의사가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두 눈의 초점을 맞춰 사물을 보는 '눈의 과학'을 말하며, 황희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밤중에 책을 읽다가 두 눈을 번갈아 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좌우의 시력이 다른 심한 짝눈이다. 눈이 피곤할 때는 초점을 맞추려 애쓰기보다 눈을 번갈아 뜨는 편이 더 나은 것이다. 뜨고 있는 눈은 힘이 들지만 감은 눈이 그 동안 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한 지식체계의 변두리에서는 지식이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 오히려 중심부에서는 지식이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본다. 제가 무지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지에 둘러싸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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