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안성 칠장사의 전설·역사

도적 7명 교화시킨 고려 혜소국사 '중건'

경인일보

발행일 2017-08-29 제18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많은 전설과 역사를 안고 있는 칠장사
칠장사 전경. /효명고 제공

불도 귀의한 도적들 '일곱 나한' 거듭나
조선시대 인목대비 원찰로 왕실과 인연


2017082801001779400082832
안성시 죽산면 칠현산(七賢山) 자락에 칠장사가 있습니다. 이 사찰이 선덕여왕 또는 진덕여왕 때 창건됐다고는 하지만 이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칠장사와 관련된 역사는 고려 시대에 죽산 출신인 혜소국사(972~1054)가 현종5년(1014) 중건한 이후에야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칠장사의 알려진 역사는 혜소국사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지요. 속명이 이정현(李鼎賢)인 혜소국사는 9세에 승려의 길로 들어섰으며, 성종 15년(996)에 승과에 급제해 덕종 때는 교종(敎宗)의 가장 높은 지위인 승통(僧統)이 됐고, 문종 3년(1049)에는 왕사(王師)로 임명됐습니다.

그는 문종 8년(1054) 연로해 고향인 죽산의 칠장사로 돌아와 그 해 11월 좌선한 채 입적했습니다. 문종은 그를 칠장사의 남쪽 기슭에 장사지내도록 하고, 혜소(慧炤)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칠장사에는 혜소국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지금의 칠현산은 원래 아미산(蛾眉山) 또는 칠현산(漆賢山)으로 불렸으며, 일곱 명의 도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일곱 도적 중의 한 명이 칠장사의 샘가에 왔다가 금으로 된 바가지를 발견하고 얼른 품에 감춰 산채로 가서 동료들에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도적들도 각각 금바가지를 갖고 왔다고 하면서 이를 꺼내 보였는데, 모두 쪽바가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도적들은 이 모두가 혜소국사의 신통력에 의한 것임을 알고 서로 논의해 그의 제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후 열심히 불도를 닦아 일곱 명 모두 나한의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혜소국사가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한 이후로 漆賢山(칠현산)을 七賢山(칠현산)으로, 漆長寺(칠장사)는 七長寺(칠장사)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일곱 나한은 칠장사가 쇠락하는 앞날을 내다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돌로 된 형상만 남자, 마을 사람들이 돌나한을 고이 모셨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나한전에 유과, 사탕 등 그다지 값나가지 않는 예물을 올리며 빌었고, 나한은 어려운 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줬다고 합니다.

나한전은 서민들의 삶이 팍팍할 때마다 위로받을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칠장사 내의 나한전에는 지금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일곱 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혜소국사가 도적들을 교화시킨 이야기는 이후 소설 임꺽정의 이야기로 되살아납니다. 홍명희는 실제 있었던 명종 때의 도적 임꺽정과 전설로 전해지는 칠장사의 도적을 연결했습니다. 임꺽정과 그의 부하들이 스승으로 모신 갖바치가 병해대사가 돼 안성의 칠장사에 기거하게 된다는 벽초 홍명희의 소설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또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는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칠장사에서 묵으며 유과를 올리고 정성을 들이자 꿈에 나한이 나타나 과거 시험 문제를 알려줘 과거에 합격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칠장사가 서민들의 삶과 밀접한 사찰만은 아닙니다. 고려 때 불교를 숭상했던 정책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을 고수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불교 승려들의 도성 출입까지 통제했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는 왕실과 사대부 집안의 원찰이 돼 그들의 후원을 받기도 합니다.

칠장사는 선조의 왕비 인목대비가 원찰로 삼은 절이었습니다. 인목대비는 인조반정 후 광해군 때 어린나이로 죽임을 당한 영창대군과 아버지인 김제남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칠장사를 이따금 찾았고, 자신의 어려운 심정을 시(詩)로 표현한 친필 족자를 이곳에 남겨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강화도에서 죽임을 당해 남한산성 아래로 이장했던 영창대군의 묘가, 성남시가 개발되면서 1971년 일죽면 고은리로 다시 이장됐던 것은 이러한 칠장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칠장사는 그 안에 담긴 전설과 역사적 사실 외에도 주목할 만한 유물들이 많이 전해지는 사찰입니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칠장사에 가서 전설과 역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장연환 효명고 교사

※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인일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