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가 햇살을 이고 와서/감나무 잎에 부려놓았다
귀뚜라미가 악기를 지고 와서/뽕나무 아래서 연주한다
여치가 달을 안고 와서/백양나무 가지에 걸어놓았다
방아깨비가 강아지풀 숲에 와서/풀씨 방아를 찧고 있다
가을을 이고 지고 안고 찧고 까불며 오느라
곤충들 뒷다리가 가을밤만큼 길어졌다
공광규(1960~) |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과 같이 현재형의 생명체는 모두가 강인한 것이다. 이 가을에 서면 지난여름을 지나 온 자들만이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매뚜기' '귀뚜라미' '여치' '방아깨비'의 울음, 그것은 작지만 예사롭지 않게 들려오면서 여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 신비한 소리를 '감나무 잎' '뽕나무 아래서' '백양나무 가지' '강아지 풀 숲'에서 들으면서 가을이 성큼 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약한 곤충들이 "가을을 이고 지고 안고 찧고 까불며" 온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길어진 곤충 뒷다리 가을밤만큼' 지금―여기에 있다 어쩌면 위대한 것은 산과 바다와 같이 크고 높은 것 보다 보잘것없이 뒹구는 작고 낮은 것에 있지 않던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