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홋카이도 아이스크림

이충환

발행일 2017-09-06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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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식재료 마다 '홋카이도 산(産)' 강조
포도빙수 등 인천대표 8미(味)라는게 아리송
강화 순무·연평도 꽃게 등 재료 쓴 음식 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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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요코의 마음속에도 빙점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책장에 합쳐진 아내의 애장도서에 포함돼 있던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氷點)'에서 처음 홋카이도를 만났다. "세계 - 이 말은 언제나 나에게 코끼리와 거북이가 필사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원반을 생각나게 했다. 코끼리는 거북이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북이는 코끼리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20대의 혼란스러웠던 정신세계와 결별을 선언한 첫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에서 주인공이 사진 속 양을 찾아간 곳이 홋카이도였다.

우리에겐 '북해도(北海道)'란 이름이 더 익숙한 일본 열도 북단의 땅. 수많은 일본 소설과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우리 소설에선 조정래의 '아리랑'에 등장한다. 차득보가 징용에 투입됐던 곳, 그리고 공사장에서 탈출해 아이누족의 마을로 숨어들었던 곳, 그곳이 바로 홋카이도다. 계절상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와이ㅤ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1995)와 다카쿠라 겐이 왜 일본 국민배우인 지를 보여준 영화 '철도원'(1999)에서 홋카이도의 설경은 몽환적이었다. 이번 여름 휴가지로 택했던 것도 그런 작품들의 영향이 컸다.

작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빌렸다. 그리고 소설의 공간, 작가와 감독의 시선이 닿았던 곳들을 찾아다녔다. 이미 라벤더 꽃잎이 져서 보랏빛 잔영만 희미한 후라노에서 동남쪽 작은 도시 오비히로로 향하는 세 시간 거리의 시골길은 장관이었다. 달리는 내내 좌우 차창으로 초록과 연두, 그리고 황금색의 천 조각들을 이어붙인 커다란 조각보 같은 구릉지대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밀, 콩, 옥수수, 해바라기, 메밀, 감자, 양파 등 다양한 작물들이 저마다 다른 농담(濃淡)의 색을 발하며 만들어내는 파노라마였다.

그런데 여행 내내 그런 풍광만이 나를 흥분시킨 건 아니다. 가슴을 뻥 뚫리게 했던 정경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길에서 보았던, 그 땅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였다. 그리고 먹거리를 다루는 그들의 깊은 정성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이었다. 호텔과 료칸들은 식재료마다 '홋카이도 산(産)'임을 강조했다. 콩은 달콤했고, 옥수수와 감자는 찰지고 부드러웠으며, 우유는 진하고 고소했다. 그런 우유로 만든 유제품의 맛과 품질 또한 빼어났다. 홋카이도에서 치즈와 버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메이지시대부터니 벌써 150년이나 된 역사다. 가는 곳마다 아이스크림이 있고, 그때마다 일부러 찾아서 먹어 본 그 맛과 질은 단연 최고였다. 점원으로부터 건네받는 순간 느끼는 묵직함이 직감적으로 원재료에 대한 신뢰를 갖게끔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의 식재료와 먹거리를 생각했다. 우리가 기울이는 정성과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식이야기들을 생각했다. 인천에도 '8미(味)'라는 게 있다. 그런데 삼계탕, 포도빙수, 랍스터해물탕 등이 어떻게 해서 인천을 대표하는, 인천의 계절을 대표하는 먹거리에 포함됐는지 아리송하다. 그냥 음식점 인기투표였을까. 호텔에서도 '인천 산(産)'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강화도 순무와 속노랑고구마, 백령도 돌미역, 연평도 꽃게, 덕적도 우럭으로 만든 음식을 인천의 호텔 뷔페에서 드신 적 있는가. 그런 재료로 만들었다는 살뜰한 설명을 접하신 적이 있는가.

한 가지 위안은 홋카이도의 아이스크림도 처음부터 맛있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누이 루카의 소설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2010)에서 이시바시 노인은 패전 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과의 추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진주군 숙소에서 먹은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지. 아이스크림 장수가 파는 건 맛이 밍밍해. 그리 달지도 않고. 그런데 진주군 장교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은 큼지막한 통에 들어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데다 으깬 딸기까지 들어있었다니까. 맛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구나 싶었지."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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