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양이 사람을 잡아먹기 전에

채효정

발행일 2017-09-0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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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들에게 로봇에 대해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
어떤 의도로 유포되는지 물어야
더 나은 삶 이끌지, 더 많은 인간이
새로운 양들의 먹이가 될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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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양은 돈이 되었다. 털과 젖과 고기를 주었던 양은 방직산업이 발달하자 신사 숙녀들의 고급 모직코트가 되었고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었다. 더 많은 양들이 필요했다. 양을 먹일 더 많은 목초가 필요했다. 지주들은 농토를 목초지로 바꾸었다. 사람의 먹거리가 양들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갈아엎어졌다. 땅주인들은 양들에게 땅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쫓아내고 울타리를 쳤다. 삶터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로 흘러들어 노동자가 되었다.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유토피아'에서 당시 영국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정말로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을까. 그 때 땅주인들은 양들과 함께 사는 또 다른 짐승들을 보았다. 실은 그들이 보기에 '짐승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돈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의 노동이 자신들을 먹여 살려 주었음에도 이제 양들만큼의 값어치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잡아먹을 수도, 가죽을 벗겨 구두로 만들 수도, 털을 깎아 양복을 만들 수도 없다. 가죽이 벗겨지도록, 일을 시킬 수는 있지만 그도 쉽지만은 않았다. 양들과 달리, 그들은 말을 할 줄 알고, 생각도 할 줄 알고,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는 대들 줄도 아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칼을 갈 줄도 알고, 낫을 쓸 줄도 알았다. 돈 버는 신기술에 일찍 눈을 뜬 혁신가들에게 울타리를 부수는 그들은 중차대한 '산업혁명'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자 무식꾼에, 골칫덩어리인 인간들이었다.

지주들은 기업가가 되었고 무역상이 되었다. 새로운 산업의 개척자인 그들은 '앙트레프레너(창업가)'라고 불렸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벌어 점점 더 많은 방적기계를 샀다. 기계는 돈이 되었다.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아가며 돈을 벌어다줬다. 그 때 그들은 기계 옆에 부속된 또 다른 기계를 보았다. 실은 그들이 기계처럼 다루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계는 원천적으로 불량품이었다. 그들은 기계와 달리, 잠을 자고, 쉬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였다. 1844년 독일 슐레지엔 지방의 직조공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방적기계 앞에서 쓰러져 죽을 지경이 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기계가 인간을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혹한 노동을 시킨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기계를 나막신을 던져 멈춰 세우고 도끼와 망치로 부수었다.

양과 기계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왔을까. 2014년 10월 LG유플러스 콜센터의 노동자가 가혹한 업무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컴퓨터는 쉴 새 없이 콜을 연결하고 업무량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옆자리의 동료인간과 경쟁시켰다. 그를 죽인 것이 과연 '컴퓨터'였을까. 1990년대 IT혁명이 왔을 때 우리는 미래의 청년들이 실리콘 밸리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다. 물론 그런 미래가 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가 되는 대신 컴퓨터 앞에서 밤낮없이 일하다 과로사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G밸리'라고 불리는 구로디지털단지는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지상의 오징어잡이 배'라 불린다.

이제 로봇이 돈이 되는 시대가 왔다. 우리 시대의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정신)은 '4차 산업혁명'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이 로봇은 이제 누구를 잡아먹을까. 로봇은 노동조합도 만들지 않고, 단체교섭도 요구하지 않는다. 자지도 쉬지도 않고 일하며, 무제한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근로기준법 59조'의 철폐를 외치지도 않는다. 그런 로봇과 인간이 경쟁할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존재인 인간이.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로봇에 대해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라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과연 로봇인가.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 담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유포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게 과연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지, 아니면 더 많은 인간이 새로운 양들의 먹이로 되고 말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미래로 갈지.

/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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