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00여개국 돌며 여행 에세이 쓴 김인자 작가

그녀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7-09-1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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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남미 페루의 삐삭 유적지에서 야생 야마(낙타과)의 사진을 찍고 있는 김인자 작가. /김인자 작가 제공

198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현대시학으로 등단… 결혼 후 '詩 쓰기' 시작
43세때 '첫 발' 20여년간 히말라야 트레킹에 아프리카 트럭여행까지 도전
휴대전화 없이 카메라만 들고 빵 한 조각 나눔의 행복 등 사람이야기 담아
산문 쓰더라도 나는 '결국 시인'… 시를 쓰며 인생이 여행인 듯 흘러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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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를 세워 보우!라고 인사하는' 아이에 대해 김인자 작가는 썼다. '잠보!'라는 인사와 '하쿠나 마타타'라는 인사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책 속에는 세마댄스를 추는 세마젠들도 있다. 치맛자락과 신발 끄는 소리로 춤은 시작된다.

무용수들은 아주 느리게 돌기 시작해 조금씩 빨라지는데 같은 동작이 10~15분간 지속된다. 이는 더 깊은 고통으로 들어가기 위한 무아의 세계, 즉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진정한 망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고('사과나무가 있는 국경' 71p.).

요즘은 누구나 여행을 한다. 이번 추석 연휴동안에는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이제 여행은 특별한 것이 못된다. 여행관련 서적도 넘쳐나서 여행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여행자가 되는 동안 김 작가는 여행 에세이를 10여 편 발표했다.

모두 여행 에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지만 어떤 책은 가이드 역할을 하고, 어떤 책은 시집 같기도 하다. 올해 7월에는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이라는 제목의 '포토 에세이'를 펴냈다. 20여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그 얼굴을 쓰다듬는 것 같은 글을 모았다. 여행보다는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이 담겨있는 책이다.

김인자
아프리카 잠비아 오지마을에서. /김인자 작가 제공

김인자 작가는 198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결혼해 수원으로 와서부터 시를 썼는데 특별히 시를 배운 적은 없다고 한다. 시는 배워서 될 게 아니라고 일찌감치 생각했다. 배우기보다는 그저 다르게 보려고 애를 썼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여행은 43살에, 두 딸과 함께 했다. "그 당시에는 혼자 여행은 상상할 수 없었어요. 남편은 공무원이고 저는 종부고. 여행을 시작할 때 혁명수준의 투쟁을 했어요. 혼자 처음 여행 갈 때는 패키지로 간다고 둘러대고 개인여행을 했어요." 서유럽에서 시작한 여행로는 100여 개국으로 뻗어 나갔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7차례 떠났고, 킬리만자로며 안데스 등 높다는 산 근처에는 다 가봤다. 수십 개국을 여행한 끝에 아프리카 트럭여행을 시도했다. '인류의 시원(始原)'이라는 아프리카에 꼭 가고 싶었는데, 국내 여행사에는 아프리카 여행상품이 없었다. 영국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팀을 꾸릴 수 있었다.

17명이 한 팀인데 아시아인은 김 작가 뿐이었다. 이십대 백인 청년들과 개조한 트럭을 타고 돌아다녔다. 청년들은 여행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김 작자의 경험은 여행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완전히 다른 풍경과 사람들을 만났다.

김인자
아프리카 말라위 빌리지 칸데비치에서. /김인자 작가 제공

아프리카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여행 중에는 언제나 새롭고 놀라운 것들,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한 번은 말라위에 갔다. 둘째 딸이 영국의 NGO단체 소속으로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 작가가 알던 둘째 딸은 지극히 평범한, 도시아이였다.

"숙소에 물을 받아 놓고 쓰는 욕조가 있었어요. 죽은 쥐가 물에 떠있는 걸 보더니 딸아이가 맨손으로 건져 뒤뜰에 묻더라고요. 벌레 한 마리에 기겁하고 난리치던 아이였는데 그렇게 변한 것을 보고 놀랐죠. 또 한번 놀란 건 같이 봉사 활동하는 스텝들이 인사하러 왔을 때였어요. 마침 멸치액젓으로 김치를 담그고 있었는데 딸이 스텝들에게 김치를 먹이려는 거예요. 나는 그들이 액젓 냄새를 싫어할 것 같아 그러지 말라고 말렸는데, 딸은 무슨 상관이냐고 우리 음식이니 우리 방식 그대로 경험하는 게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곳에서 딸과 한달 동안 지냈는데, 딸이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6대주를 두루 다니는 동안 새로운 것과 마주치면서, 김작가는 변했다. 여행을 할수록 비자를 받는 것을 비롯해 여행의 모든 절차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또한 아무리 어려워도 하려고 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배웠다.

김인자
모로코 사하라 사막 앞에서. /김인자 작가 제공

여행사 상품목록에 없는, 나만의 여행을 하면서 출판 제의도 받았고, 시집 아닌 책을 쓰기 시작했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제아무리 아름다운 절경보다도, 산해진미보다도, 더 좋은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도 변했다.

"여행하면서 쇼핑을 한 적이 거의 없어요. 먹고 입는 데는 돈을 잘 안 써요. 그나마 챙겨간 물건들도 줄이고 줄여서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 짐을 반으로 줄이곤 하는데, 한번은 베트남에서 한 소녀를 만났어요. 전통의상을 사달라고 일주일동안 집요하게 따라다니더라고요. 그러다 소녀의 집에 가게 됐는데 가족 전부가 아픈 거예요. 그래서 옷도 사고 가방이랑 모자까지 샀어요."

여행하면서 만난 아이들은 그녀가 건넨 빵 한 조각에 행복해 했고,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은 더 행복했다고, 노인들은 인생의 정수를 품고 있다가 그녀에게 슬쩍 보여주었는데 그 때도 행복했다고, 그러니까 여행하면서 얻은 행복은 대게 사람에게서 비롯됐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사람에 올인하는 여행을 한다.

김인자
호주 울루루 가는 길의 붉은사막에서. /김인자 작가 제공

휴대전화는 가져가지 않고 카메라만 두어대 챙겨간다. 아이들을 찍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기를 찍도록 놔두기도 한다. 정신의 무장을 전부 해제하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까운 게 없다.

호텔비로 쓸 수 있는 100달러가 생기면 5달러짜리 방에 묵고 아이들을 위해 95달러를 쓴다. 그게 재밌다. 그렇게 하기위해 여행을 한다.

여행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대관령에 머무른다. 산 좋아하는 남편이 10여 년 전에 마련한 집이 있다. 숲을 좋아해 차를 한 잔 마셔도 숲에 가서 마시는데, 숲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고라니가 옆에 와서 기웃거린다고 한다. 지난해 발표한 에세이 '대관령에 오시려거든'에 대관령의 이국적인 자연과 삶을 기록했다.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이 사람에 대해 쓴 글이라면 '대관령에 오시려거든'은 자연에서의 삶에 대해 쓴, 짝을 이루는 책이에요."

일 년 중 4개월쯤은 여행을 하고, 4개월쯤은 대관령의 별장에 체류하고 나머지는 수원의 집에서 지낸다. 집에서는 시를 쓴다. 마지막 시집을 출판한 것은 2004년이지만 지금도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있다. 여행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리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지 않았지만 시는 언제나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산문을 쓰더라도 나는 결국 시인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도 시를 쓰는 과정 중의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한동안은 수원집의 책상에 붙박혀 글을 쓸 텐데, 그 시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뉴질랜드에 갈 계획이에요. 그리고 또 시를 쓰며 인생이 여행인 듯 흘러가겠죠."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김인자
■김인자 작가는?

-강원도 삼척 출생

-198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겨울여행' 당선

-시집 : ▲겨울 판화 ▲나는 열고 싶다 ▲상어 떼와 놀던 어린 시절 ▲슬픈 농담

-산문집 : ▲그대, 마르지 않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대관령에 오시려거든

-여행서 :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 포구 ▲걸어서 히말라야 ▲풍경 속을 걷는 즐거움, 명상산책 ▲아프리카 트럭여행 ▲남해기행 ▲사색기행 ▲나는 캠퍼밴 타고 뉴질랜드 여행한다 ▲뉴질랜드에서 온 러브레터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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