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익명성의 클로즈업

홍숙영

발행일 2017-09-22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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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숙영-한세대교수
홍숙영 한세대 교수·미국 ECU초빙교수
실제보다 TV나 사진에 유난히 멋지게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사진발 혹은 화면발이 잘 받는다며 부러워한다. 사진발은 프랑스어로 포토제니(photogenie)라고 하는데 포토제닉도 이 단어에서 왔다. 원래 포토제니는 사진과 영화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시적이며 미적인 특징을 지닌 이미지를 가리킨다. 벨기에 루밴 가톨릭대학(Universite catholique de Louvain)의 교수인 필립 마리옹은 1991년 이를 차용해 '미디어제니'(mediage nie)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미디어제니는 미디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나타내는 사진이나 영상을 의미한다.

뉴스는 본질적으로 극적인 사건과 이미지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에 1면을 장식하는 사진과 톱뉴스에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미디어제니에 해당한다.

경기에 이겨 환호성을 지르며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선수나 반대로 우승을 놓쳐 망연자실한 선수는 카메라가 놓칠 수 없는 인물이다. 최고의 권력자가 초라한 수인의 모습으로 법정에 서는 장면 역시 최고의 뉴스가치에 해당하기에 카메라는 보다 가까이 다가가 최상의 이미지를 건지기 위해 애쓴다.

얼마 전 미국 버지니아주 샬로츠빌에서 극우 인종주의자와 이에 맞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차량이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면서 한 명이 사망하고 이십 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이 사건은 전국적인 뉴스가 되었고 시위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한 청년의 사진이 순식간에 확산 되었으며 뒤이어 그의 이름과 소속까지 공개되었다. 횃불을 들고 무언가를 외치는 격앙된 표정의 청년은 나치 지지자들을 연상시켰으며 언론에서는 연일 악마와 같은 표정이라며 떠들어댔다. 사진 기자인 사무엘 코럼은 8월 11일 밤 버지니아 대학 캠퍼스에서 찍은 수백장의 사진 가운데 이 청년의 사진을 골랐다.

청년의 이름은 피터 사이타노빅. 20살로 네바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피터는 침묵시위에 참가한 것이었지만 누군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시위대의 감정은 고조되었고, 그 역시 격앙되었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얼굴이 도배되자 피터는 인터뷰를 자청해 자신의 이미지가 잘못 표현되었다고 항변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 감정이 고무되었을 뿐이라며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네바다 대학교의 학생들은 피터를 극렬히 비난했고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는 교내근로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학교측의 입장이 곤란해지자 결국 피터는 그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군중의 익명성과 다수가 주는 안정감 속에서 목소리를 낸다. 그 주장이 바람직한 주장인지, 해악이 되는 주장인지를 떠나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 고위공직자, 연예인, 운동선수, 언론인, 예술인, 대기업 대표 등은 우리 사회에서 공인으로 인식된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대중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공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미디어에 노출되며 따라서 사생활의 침해는 어느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위에 참가한 개인은 공인이 아니며 비록 얼굴이 카메라를 향했더라도 당시 상황에서 이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수백, 수천 혹은 수만 명 가운데 한 명이라고 믿었던 익명성이 사라지고 마치 시위를 주도하거나 주요 인물인 것처럼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 게다가 신분이 노출되고 이로 인해 직업을 잃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멀리서 봤을 때 하나의 점에 불과한 개인의 익명성을 클로즈업해 노출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에 해당하는 건지, 좋거나 나쁜 시위대의 일원인 개인이 감내해야 할 책임인지 한번 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홍숙영 한세대 교수·미국 ECU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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