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재벌에 묻는다… 한국자본주의에도 시장경제윤리가 작동하는지

이재은

발행일 2017-09-1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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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사회 가장 큰 범죄는
시장질서 교란 '사회경제적 폭력'
언제까지 불합리한 거래관행
부조리한 경영형태 용인할건지
상속세 폐지 반대·세금 더 걷으라는
존경받는 자본가들이 왜 없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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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수원시정연구원장
권력사유화와 정경유착으로 대통령, 재벌총수, 협력자들이 구속되더니 이제 법의 심판이 내려지고 있다. 이재용 회장도 실형이 선고됐다. 거대언론매체와 보수논객들이 삼성재벌 걱정을 넘어 한국경제의 위기까지 거론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형량이 약하다는 비판은 묻혔다.

필자가 학생시절부터 경제학 교수로서 살아온 40년 세월 한국사회는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부패고리는 항상 존재해왔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한국사회에서 재벌은 어떤 존재일까? 경제성장의 기관차일까 탐욕의 화신일까? '벌'이라는 말 속에선 이미 불합리하고 부당하며 음습한 부패의 냄새가 진동한다. 그러니 족벌사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재벌의 역할은 컸다. 친일·부일세력이던 초기재벌, 해방이후 귀속재산 처리와 원조물자 특혜로 축적한 재벌, 부정축재자로 몰려서도 개발계획에 협조하며 살아남은 재벌, 정부주도형 고도성장과정에서 각종 특혜로 급성장한 재벌. 밀수도 하고 국고도 수탈하고 부실공사로 인명을 살상하고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도 외면하며 성장해온 재벌의 축적.

'보릿고개'를 넘자며 은폐해온 이 불의한 구조가 선진국을 눈앞에 둔 풍요의 시대에도 온존된다면 무엇으로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겠는가? 우리 스스로 거대한 위선에 침묵하면서, 가난한 자의 작은(?) 잘못에는 분노하는 이 비정상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는가? 어둠의 조폭사회에도 양아치와 건달이 구분되는데, 하물며 금빛 찬란한 자유시장경제에서 불공정한 갑질을 계속하는 이들이 기업가로 존중받을까?

시장경제는 합리적 계약을 전제로 하며 권력적 강제를 부정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규제를 비판하고 작은 정부를 설파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완전한 경쟁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니 '시장의 실패'를 보정하는 심판자로서 정부는 필요악이다. '복지국가 큰 정부론'을 지지하는 필자도 항시 거대한 국가체제의 역기능을 경계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

그런데 궁금하다. 자유주의를 설파하면서도 왜 한국사회의 재벌지배체제에 내재하는 유착구조나 기껏 수십억 세금으로 수천억 수조원의 재산을 상속하는 불의한 세습행태에 침묵하는지, 독점대기업이 일삼는 온갖 불공정하고 부당한 갑질행태를 외면하는지.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속속 드러나는 권력과 재벌의 부당한 행태를 보면서도 더 적극적 개혁을 요구하기 보단 발목잡기에 골몰하는지. 하기야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막는 것이 강성노조라는 정치인도 있다. 재벌의 부조리가 거대 노조의 부조리를 정당화해온 면도 없지 않은데, 천민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을 탈피하지 못하는 저차적 재벌행태에는 침묵하면서도.

한국사회의 부패구조는 탐욕적인 재벌의 불공정한 축적구조에서 비롯된다. 정경유착이 만연하면 정치인도 관료도 언론도 학자도 자신들의 행태가 자본주의사회를 갉아먹는 탈법행위라는 사실을 잊는다. 이는 우리가 사회구조를 민주적으로 재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정치-경제권력의 유착구조는 더 은밀해졌고, 언론·지식인의 공론은 더 편향적이었다. 공감·공존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원리가 존중되는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완성하지 못했다.

공정한 시장경쟁원리를 신봉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큰 범죄는 인명을 해치는 육체적 폭력이 아니라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사회경제적 폭력이다. 평화적인 촛불행진은 부의 집중과 양극화는 심화되는데도 불공정과 불평등이 온존하는 현실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재벌에 묻는다. 한국자본주의에도 시장경제윤리가 작동하느냐고? 언제까지 불합리한 거래관행, 부조리한 경영행태, 불공정한 경쟁구조를 용인해야 하느냐고? 왜 한국에는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으라는 존경받는 자본가들이 없느냐고?

/이재은 수원시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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