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특집, 동행]윤호일 극지연구소장 '지금 우리의 과제'

"남극 얼음 녹으면 재앙, 극지연구에 지구 미래 달렸죠"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7-09-29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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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해빙(海氷) 다 사라지면
수면 60m 이상 올라 문명파괴
온난화 영향 북극 공기 내려와
한반도 겨울한파 '커튼효과'로

세계 18번째 남극기지 내년 30돌
과학연구 총괄 송도 '컨트롤타워'
세종·장보고기지 150명 하계활동
외적 성장 벗어나 질적 성장 중요

고 전재규 대원 희생사고 계기
쇄빙연구선 '아라온' 전격 건조
독자적·안정적 활동 가능해져
몇몇 분야 선진국 앞서는 성과


세종기지로 출발한 극지과학 3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동안 극지 전문인력이 키워졌고, 남극과 북극에 상주할 수 있는 기술이 쌓였습니다. 3곳의 과학기지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같은 극지 인프라를 가진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됩니다.

올여름 인천 도심을 비롯한 수도권 곳곳을 물바다로 만든 기습폭우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달 말 미국 역사상 최대 강우량 기록을 세우며 텍사스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Harvey)'는 8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에서도 폭우와 산사태로 1천 명 넘게 사망했다.

올여름 전 지구적 재난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바로 '지구 온난화'다. 지구 온난화를 가장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은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과 북극이다. 자연과의 동행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풀어가야 할 최대 과제라 할 수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인류에 닥친 기후변화와 환경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최적지로 남극과 북극을 택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과학자들을 극지에 파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88년 2월 17일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설립해 극지과학에 첫발을 디뎠다.

세계에서 18번째로 세워진 남극 과학기지로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다. 세종기지를 비롯한 우리나라 극지 인프라 운영과 극지과학연구를 총괄하는 기관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극지연구소다.

윤호일(57) 극지연구소장은 극지과학이 국민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강조했다.

윤호일 소장은 "남극 해빙이 전부 녹으면 전 세계 해수면이 60m 이상 오르고, 이렇게 되면 지구에 있는 문명도시는 모두 사라진다"며 "최근 계속되는 한반도의 겨울 한파는 북극 온난화의 직접적인 영향이라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창간특집 윤호일 극지연구소 소장1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우리나라는 남극에 있는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에 매년 16~18명의 월동연구대를 파견하고 있다. 남극의 여름에 해당하는 11월~이듬해 2월에 150명 규모의 하계연구대가 남극 과학기지에서 각종 과학활동을 한다. 세종기지는 올해가 30번째 월동대다.

2002년에는 북극에 다산과학기지를 개설하기도 했다. 2009년 말 운항을 시작한 7천500t급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보유하게 되면서 얼어있는 바다를 항해하며 독자적이고 안정적인 연구활동이 가능해졌다.

"세종기지로 출발한 극지과학 3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동안 극지 전문인력이 키워졌고, 남극과 북극에 상주할 수 있는 기술이 쌓였습니다. 3곳의 과학기지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같은 극지 인프라를 가진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30년은 외형적 성장에 주력하면서 극지분야 선진국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면, 앞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실질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질적 성장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윤호일 소장은 극지연구소 내에 '해수면변동예측사업단'과 '북극해빙예측사업단'을 신설했다. 기존 '물화생지'(물리·화학·생물·지질) 중심의 학제적 연구만으로는 한반도 기후변화나 자연재해 문제를 예측해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는 게 윤호일 소장 판단이다.

그는 "극지환경과 지구, 더 세부적으로는 한반도의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융합연구"라며 "학제적 연구패턴에서 벗어나 '문제해결형' 연구사업체제로의 탈바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극지연구소의 변화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북극과 한반도가 위치한 중위도 사이의 기압 차이로 인해 극지방 소용돌이가 일정 주기로 강약을 반복하는 현상을 '북극진동(Arctic Oscillation)'이라 한다. 지구가 열대지방의 남아도는 열을 북극으로 옮기는 에너지 순환작용의 일부다.

그런데 북극의 온난화로 강하게 돌고 있는 북극진동이 최근 느슨해지고 있다. 극지방에서 잡아둔 찬 공기가 중위도까지 내려오면서 미국, 러시아, 한반도 등지에 기록적인 한파가 겨울마다 이어지고 있다.

이를 커튼처럼 내려온다고 해서 '커튼 효과(curtain effect)'라고 하는데, 극지연구소 김백민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규명해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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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일 극지연구소장이 인천 송도국제도시 극지연구소 홍보관에서 세종기지로 출발한 극지과학 30년과 극지 연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극지연구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독일, 영국, 중국, 일본 같은 극지와 멀리 떨어진 국가도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습니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점점 항로가 열리고 있는 북극 개척은 경제적인 측면과 관련돼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항로 개척이나 극지연구 같은 북극에서의 활동력을 강화해야 앞으로 자원개발 등 극지방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북극 진출 인프라는 다른 경쟁 국가보다 준비가 충분치 않다. 남극 개척을 목적으로 건조한 아라온호는 1m 두께의 얼음을 깨는 것이 쇄빙능력의 한계다. 각종 실측자료 확보를 위한 북극 중심부로 진출하기 위해선 최소 2~3m 두께의 얼음을 깨고 항해할 쇄빙연구선이 절실하다.

극지연구소가 제2쇄빙연구선 건조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건조는 2003년 세종과학기지에서 조난당한 대원을 구조하러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젊은 과학자의 희생이 계기가 됐다.

제17차 세종기지 월동대에 참여했던 고(故) 전재규(1977~2003) 대원이다. 윤호일 극지연구소장은 당시 제17차 월동대장으로 부하 대원의 안타까운 사고를 지켜봐야 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극한의 환경인 남극에서 고무보트에 의존해 연구활동을 하다가 희생당하는 모습이 국민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세종기지로 전화를 걸어 위로했고, 쇄빙연구선 건조가 전격적으로 결정됐습니다. 월동대장으로서 전재규에게 미안하면서도, 전재규의 희생으로 만든 아라온호이기 때문에 더욱 감사하고 애착이 갑니다."

윤호일 소장은 1987년 조그마한 연구실에서 출발한 극지연구소의 전신인 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실에 입소해 30년 동안 극지연구에만 매진했다. 우리나라 극지 개척 역사의 산증인이다.

극지에 월동대와 과학연구대로 파견 횟수만 26차례다. 윤호일 극지연구소장은 "극지과학의 몇몇 분야에선 선진국을 앞서는 성과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극지연구 수준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과 지구의 미래를 짊어진 극지연구소의 막중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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